무책임 판치는 세상… "책이 예언서 같다고 얘기하네요"

[인터뷰] 책 '오염된 정의' 펴낸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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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사이드웨이에서 나온 <오염된 정의>가 두 달여 만에 2쇄를 찍었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탄핵안 가결, 현직 대통령 체포·구속으로 숨 가쁘게 이어지는 비상한 시절에 읽히는 책이라니…. 이 예사롭지 않은 책의 저자인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 실장을 16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책이 예언서 같다고 많이들 얘기하세요. 어떻게 이런 사태를 내다보고 썼냐고. 책 2부에 주요 정치인 인물 비평이 있는데, 그중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분을 읽고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법치와 공정을 내세워 당선된 대통령이 그에 반하는 행동으로 자기 배반의 정치를 했고, 결국은 수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거든요.”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 실장이 자신의 책 ‘오염된 정의’ 발간 기념 북토크를 하고 있다. /김희원 제공

32년 차 기자의 눈에 들어오는 한국 사회는 무책임과 몰염치가 판친다. 저마다 자기만의 진실, 자기만의 정의, 자기만의 공정을 주장하면서 진실은 타락하고 정의는 오염되었다.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김희원 칼럼’을 관통하는 이 주제는 책에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부정선거론이 12·3 불법계엄 사태의 핵심 아이디어였다는 게 체포영장 집행 전에 낸 대통령 자필 편지에서 드러나고 있잖아요. 황당한 궤변이지만, 예전에 김어준씨가 주장한 부정선거론도 마찬가지죠. 다 똑같은 문제인데, 우리는 괜찮고, 저쪽만 틀렸다고 주장하면 안 되죠.”


그는 책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12·3 비상계엄 이후 폭발적으로 드러나면서 진실과 정의가 전복되는 현실이 암울하다고 했다. 대통령이 궤변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여당이 동조하면서 우리 사회가 내전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분열을 잠재울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은 한국일보 ‘김희원 칼럼’과 인터뷰, 김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출발했다. 글을 눈여겨본 출판사 대표는 “글 잘 쓰는 언론인의 책을 내고 싶다”며 출간을 제안했다. 2023년 연말쯤 시작해 꼬박 1년이 걸렸다. 기자 경험 등 신문에 드러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새로 쓰고, 기존 글을 바뀐 시각에서 다시 쓰고, 몇 차례 보완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는 책에서 32년 기자 생활에 갈림길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취재하다가 기자를 그만둘 뻔했고, 2013년 한국일보사 뉴스룸 폐쇄 사태 와중에 생활부장에 임명됐을 땐 밤잠을 못 자며 고민하다 인사 거부를 선택했다. “그 인사를 받으면 기자로 살면서 삼아온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건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는 뉴스룸 밖으로 쫓겨난 기자들과 함께 로비에 있었다.


기자로 30년 넘게 살고 보니 그늘진 언론계 현실이 들어왔다. 언론이 사실 보도라는 본연의 역할에 실패한 사례를 수차례 경험한 그는 언론의 문제를 SNS에 공개적으로 지적해왔다. 언론은 왜 자꾸 실패하는지 묻고 왜곡된 뉴스 시장의 구조를 진단한 언론 이야기가 책 여기저기에 들어 있다.


그렇다고 언론만 탓하지 않는다.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를 ‘언론의 실패이자 언론의 성공사례’라고 했다. “MBC PD수첩이 세계 최초의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다는 보도를 하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어요. 뉴스데스크 광고가 모두 떨어져 나갔고 취재진은 징계받았죠. 대다수 언론은 일방적으로 황 박사를 옹호하는 기사만 썼고요. 그런 위협에 굴하지 않고 PD수첩은 결국 진실을 드러냈잖아요. 그런 기자도 있고, 그런 언론인이 있어 우리 사회는 한 발짝 나아가는 거죠.”


그는 책에서 자기만 정의롭다고 주장하는 유력 정치인들을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하면서도 정직함이 장점인 유승민, 반대편을 설득할 줄 아는 김부겸, 사람을 위한 정치를 일깨워준 이탄희에 주목한다. “이런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다시 한번 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은지 물었다. “각성과 성찰이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다수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분들이 목소리 큰 사람들, 극단적인 사람들 때문에 소수처럼 위축되는 거를 경계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면서 ‘맞아, 우리가 다수야’를 확인하는 계기로서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책 에필로그에 사회부장 때 쓴 기사가 실려 있다.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 대결 의미를 총정리한 리뷰로, 2016년 3월16일자 한국일보 1면에 ‘위대한 경연이 끝나고…우린 다시 존재를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그가 외로울 때마다 꺼내본다는 기사란다.


그는 “두려움이 낙관을 압도했지만, 덕분에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깨달았다”고 기사에 썼는데,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는 그의 첫 책 ‘오염된 정의’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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