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188) 쉼표로 남은 그 순간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겨울바람이 불자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강렬한 흐름 속에 몸을 맡긴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쉼표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넘어가는 해와 함께 오로라를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짐을 쌌다. 지구 반대편으로 향하며 한 다짐은 단 하나. ‘마음을 비우고 오자’. 그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착륙과 함께 찾아온 비극적인 속보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난생처음 보는 절경이 펼쳐졌지만, 이내 뉴스 속 장면이 눈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착잡함을 달래고자 튼 노래는 점점 더 작게 들려왔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오로라 지수에 마음도 함께 요동쳤다. 초조한 마음 탓일까. 머리 위로 칠흑 같은 어둠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사흘 밤낮을 운전해 멈춘 곳은 아이슬란드 서부의 이름 모를 한 마을. 새해를 몇 시간 앞둔 그곳에서는 폭죽놀이가 한참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며칠 사이 느낄 수 없었던 노곤함이 찾아왔다. 기대를 접고 차로 향해 눈을 붙였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희미하게 뜬 눈 사이로 형형색색 빛이 들어왔다. 마음을 비우자 비로소 나타난 오로라. 새하얀 눈밭에 홀로 누워 하늘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나온 삶의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은 그렇게 마음 한편 쉼표로 자리 잡았다. 다시 돌아온 현실에는 애석하게도 무질서가 가득했다. 렌즈 너머 펼쳐지는 비극을 담을 때마다 쉼표로 남은 그 순간을 회상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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