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장치 없는 뉴스와 파괴된 공론장

[언론 다시보기]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픽사가 만든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애니메이션 〈월E〉. 뛰어난 연출력으로 영화적 재미와 가볍지 않은 감동을 선사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데 내겐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지구청소 로봇 월E가 우연히 만난 탐사로봇 이브를 좇아 하늘 위 우주선 안으로 날아간 뒤 인간들과 마주치는 장면. 수백년 동안 우주선에 머물던 인간은 완벽하게 세팅된 환경에서 무한한 쾌락을 맛보는 중이다. 눈앞에는 각자에게 최적화된 오락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손을 뻗으면 언제든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세팅된 낙원 같은 공간. 인간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이유도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의 확증편향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알고리즘의 폐해를 이보다 더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필터버블의 문제를 예리하게 은유하고 있다.


어쩌면 현실은 우주선 속 환경보다 조금 더 암울한 쪽으로 진행 중인지 모른다. 오락과 즐거움만이 아니라 뉴스와 정보의 영역에서도 알고리즘이 지배력을 확장해 간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에서 확인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매년 초 연간보고서로 발표하는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4’에 따르면 레거시 미디어 대신 오락과 레저의 플랫폼으로 여겨지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뉴스를 소비한다는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정책적으로 뉴스 비중을 줄여가는 메타만이 하락세를 보일 뿐이다. 동영상 플랫폼과 검색엔진(특히 우리나라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을 통해 온라인뉴스를 소비한다는 흐름이 커지는 대신, 뉴스 웹사이트에서 뉴스를 소비한다는 응답자는 2018년 대비 10%포인트 하락한 22%로 확인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뉴스를 보기 위해 언론사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대신 오락과 레저의 플랫폼으로 간주되던 유튜브 등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추세가 갈수록 강화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세계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이들 플랫폼이 애당초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이들 플랫폼은 그저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도록 더 많은 이용자를 더 많이 머물게 하려는 목표 아래 디자인된 곳이다. 그래서 돈이 된다면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극단적인 내용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내보내도,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도 사람들이 모여든다면 그뿐 견제장치를 가동하지 않는다. 현실 법체계 안에서는 사회적 책무를 강제하는 방법도 없다. 한밤중 서부지법 앞의 난동을 생중계하며 슈퍼챗을 긁어모아도, 스트리밍되는 동안 위법적인 댓글로 선동을 부추겨도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분석을 토대로 전망해보면 향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 플랫폼에서 뉴스를 소비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럴까? 대략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서구식 백문이 불여일견쯤에 해당하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즉 이용자는 날것 그대로의 유튜브 콘텐츠를 정제되지 않은 것이라고 불편해하기보다 주관적인 편집이 개입하지 않은 신뢰할만한 콘텐츠로 여긴다. 다음은 편리함. 이용자는 뉴스를 보기 위해 따로 신문을 본다든지 TV를 켠다든지 언론사 사이트에 방문할 필요 없이 유튜브에서 놀다가 뉴스 콘텐츠를 클릭만 하면 그만인 편리성에 매료돼 있다. 맞춤형으로 최적화된 정교한 알고리즘 덕택에 맘에 쏙 드는 콘텐츠도 무한대로 쏟아진다. 그러니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최대치의 도파민을 방출하는 엔터테인먼트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관점의 다양함. 유튜브 등은 일관된 관점을 가진 주류 언론사와 달리 여러 가지 의견이 공존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관점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본다. 요약하자면 이용자들은 유튜브가 신뢰할만한 콘텐츠가 다양하고 편리하니까 오락과 레저를 넘어 뉴스까지 소비한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니 어찌해야 할 것인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언론의 복원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정치의 복원은 불가능한데, 분탕질로 어지럽혀진 뉴스생태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원해야 할 것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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