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협 폭력·선동에 단호히 대응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19일 새벽은 12·3 비상계엄에 이어 민주주의와 법치가 또 한 번 유린당한 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그날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한 사건은 폭동이라 규정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시위대가 파손한 유리창·출입문·벽면·책상 등에서 발생한 손해액이 6~7억원에 이른다. 어디 물적 피해뿐이었는가. 쇠파이프와 벽돌에 맞아 경찰 5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법원 직원 20여명은 난동이 시작되자 1층 출입문을 자판기로 막다가 옥상으로 몸을 피해 한동안 추위와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JTBC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법원 7층에 들이닥친 시위대는 그날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판사를 찾아 건물을 샅샅이 뒤졌다. 판사 개인에 대한 테러 의도가 있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위대는 취재진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따르면 MBC·KBS·JTBC·MBN·연합뉴스 기자들이 시위대에 둘러싸여 심각한 수준의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 시위대는 “죽여도 괜찮아” 같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취재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고 바닥에 쓰러뜨려 짓밟았다. 촬영 장비를 망가뜨리거나 빼앗아가기도 했다. 기자들은 공권력이 철저히 무력화된 현장에서 이성 잃은 시위대를 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당시 느꼈을 공포감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런 일이 2025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어렵다. 오죽하면 “민주화 때 투석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취재 현장보다 더 위험한 현장”(이호재 한국사진기자협회장)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이 사태는 결코 충동적 일탈이 아니다. 유력 정치인과 극우적 인사의 선동이 누적된 결과다. 윤 대통령은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 직후 극렬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법치 파괴를 부추겼다. 관저에 찾아온 국회의원들에게는 기성 언론이 아닌 유튜브를 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그간 부정선거 등 주로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며 언론을 향한 불신과 증오를 조장해왔다. 광화문 집회에선 ‘방송국에 10만명씩 찾아가자’라는 식의 선동이 횡행했다. 한남동 집회 현장에서 취재진을 향한 시비와 폭력이 심심찮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이 같은 징후가 응축돼 끝내 곪아 터진 것이 19일 새벽의 폭력 사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언론사·국회·헌법재판소 등을 가리켜 “만명씩 모여 진격하자”라며 벌써 또 다른 폭동을 예고하고 있다. 철저한 수사와 대책이 필요하다.


언론계는 이번 참담한 사태 앞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극단주의자들의 분노가 특정 언론사를 향한다고 여겨 회피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다양성과 관용이다.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표적이 안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맞닥뜨렸을 때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장과 행동에는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한목소리로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인·유튜버의 무책임한 선동에 지면과 전파를 내주며 여과 없이 증폭하는 역할을 해온 것은 아닌지 자성할 필요도 있다. 수사기관이 요구한다면 서부지법 현장 촬영 자료를 증거로 제공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당장 개별 언론사 차원에서 취재진에 대한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안전한 취재 환경은 언론 자유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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