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가 TV 수신료 통합징수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21일 국무회의에서 최 대행은 수신료 통합징수법에 대해 “한국전력이 TV 수신료와 전기 요금을 결합하여 징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으로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될 거란 점 등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했다.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둔 KBS, EBS는 거부권 행사에 즉각 “유감”과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이날 최 대행은 국무회의를 주재해 지난해 1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이번 국무회의에 앞서 이미 최 대행이 수신료 통합징수법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KBS 구성원의 우려가 나왔고 KBS, EBS 사측에서도 분리징수 시행 이후 위탁비용 증가 등으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며 통합징수법 공포를 촉구한 바 있다.
최 대행은 국무회의에서 “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공영방송 재원 마련을 저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서도 “수신료 분리징수 제도는 작년 7월부터 시행돼 이미 1500만 가구에서 분리 납부를 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수신료 과오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다시 수신료 결합징수를 강제하게 된다면 국민들의 선택권을 저해하고 소중한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의요구 대상이 된 수신료 통합징수법은 방송법 67조에 항목을 신설해 통합징수 방식을 법률로 보장한 내용이다. 이에 앞서 2023년 7월 정부는 방송법 시행령을 고쳐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결합해 징수하는 기존 방식을 금지시켰는데, 이에 “정부가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한다”는 언론계 비판이 나왔다. 실제로 분리징수 제도 시행 이후 징수비용 증가로 인해 KBS·EBS의 재정위기는 가시화됐는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등에 따르면 KBS는 지난해 분리징수를 6개월 간 시행한 결과 전년 대비 330억원 이상 수신료 수입이 줄었고, 올해 수신료 수입 역시 전년에 비해 500억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KBS는 21일 입장문을 내어 “재의요구권이 행사된 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KBS는 또 “수신료 통합징수 제도가 시행되면 오히려 분리징수에 따른 시청자 불편과 혼란이 해소될 것”이라며 최상목 대행이 언급한 거부권 이유도 사실상 반박했다. 이어 “수신료 분리징수로 성실히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들은 불편을 겪었고, 소중한 수신료의 상당 부분을 징수비용으로 써야 했다”고 강조했다. EBS도 이날 “수신료 통합징수법이 즉시 공포되지 못해 안타깝다”며 “국회로 다시 넘어간 방송법 개정안이 재의결 단계에서 원안대로 처리되길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 이유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KBS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특별부담금에 해당하는 수신료에는 납부선택권이라는 말이 존재할 수가 없다”고 지적하며 “최 대행은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언론탄압 공범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라고 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이 다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만 수신료 통합징수법의 경우 당시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61명 중 161명 찬성으로 가결돼 국민의힘이 계속 반대하는 한 법안 통과는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KBS본부가 성명에서 “구성원들이 그토록 염원한 수신료 통합징수법이 사실상 무산돼 너무나 통탄스럽다”고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앞서 국무회의 하루 전인 20일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은 브리핑을 열어 수신료 통합징수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분리고지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미 분리고지 중인 가구들에 일대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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