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개원자금 어떻게 구하는지 아세요? 우리 세금이 들어가요.’ 첩보를 처음 접했을 때 흠칫했습니다. 최근 매일 아침, “12월 정형외과 OPEN”이란 현수막을 보면서 출근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또 들어서네. 바로 건너편에도 정형외과 있는데 장사는 잘 되려나?’란 오지랖 섞인 생각만 했을 뿐, 새 병원을 짓는데 들어가는 자금과 그 출처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 세금이 들어간다는 걸까, 직접 개원 대출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먼저 취재를 도와줄 의사들을 수소문했습니다. 그후 함께 이 업계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대출 브로커를 찾아가봤습니다. 상담 받아보니, 진료과목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임대 보증금에 인테리어, 의료장비, 직원 월급 등 포함하면 의원 한 곳 여는 데 5억 원은 넘게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은행 대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신보 대출’, 즉 신용보증기금을 이용한 불법 대출을 이용해야 된다는 게 브로커들의 은밀한 제안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불법 대출은 쉬웠습니다. 그동안 적발이 안 된 이유도 명료했습니다. 서로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즉, 의사들은 수수료는 들지만 개원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단 생각에 불법대출에 대해 함구하고, 수수료를 나눠먹는 브로커도 외부에 알릴 리가 만무했습니다. 여기엔 세무사, 의료기기업체들도 소개 명목으로 수수료를 나눠먹었습니다. 끈끈한 공생 관계를 기반으로 한 불법 의료 대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만큼 이제까지 정부지원금이 허술하게 지급되어온 경우가 빈번했단 의미입니다. 많은 언론이 감시망이 되어 지적을 하지만, 어느 순간 또 뚫리길 반복입니다. 모든 제도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이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손보아야 합니다. ‘나랏돈은 눈먼 돈’이란 말이 옛말이 될 수 있도록, 작은 제보 하나 놓치지 않고 끝까지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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