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표본 허점 많은데… 탄핵 틈탄 우후죽순 여론조사
[믿기 힘든 조사, 혼란 키우는 보도]
5일 '尹 지지율 40%' 여론조사 결과
'달라진 여론', '기적·염원' 헤드라인
편향된 문항·ARS 조사 한계 지적도
보수언론·유튜브 등으로 결과 확산
결국 극우 결집 불쏘시개 역할하며
다시 여론으로 밀어올리는 악순환
여론조사를 둘러싼 논쟁으로 떠들썩했던 한 주였다. 내란죄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비상계엄 사태 전보다도 올랐다는 조사 결과에 이를 비판·반박하는 보도가 나오고, 보란 듯이 대통령 지지율이 더 상승했다는 결과가 이어지면서 논쟁은 가열됐다. 부실한 조사, 문제가 있어도 일단 쓰고 보는 언론의 속성, 진영 논리에 정치적 욕망이 더해지며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발단이 된 건 아시아투데이가 5일 내놓은 조사 결과였다. 아시아투데이는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에 의뢰,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응답률 4.7%)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었으며, 특히 2030 지지율이 40%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곧장 이를 인용한 보도가 포털에 쏟아졌다. ‘달라진 여론’,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등의 표현이 헤드라인에 등장했다.
여기에 의문을 갖는 언론도 많았다. 해당 조사의 문항 자체가 편향됐다는 점과 기계가 묻는 ARS 조사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조합하는 RDD 방식은 확률적인 신뢰도가 높지 않고, 기계가 묻는 ARS 조사에선 전화면접보다 ‘정치적 고관여층’이 응할 가능성이 커 보수층 응답자가 과대 표집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관련해 흥미로운 분석도 나왔는데, 장슬기 MBC 데이터전문기자는 12일 기사에서 “2025년의 보수층은 ‘샤이’하기보다는 오히려 ‘샤우트’를 하고 있다”고 분석하며 유튜브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진단을 전했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올랐다는 조사 결과는 보수·극우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며 “극우 결집 불쏘시개”(한겨레) 역할을 했고, 다시 이를 ‘여론’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아시아투데이가 12일 두 번째 정례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며 윤 대통령 지지율이 46%로 “2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한 게 한 예다. 아시아투데이는 이날 1면과 사설 등에 해당 조사 결과를 크게 실으며 “이처럼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강제집행 등 공수처와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놓고 민심의 역풍이 강하게 불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내란죄 피의자에 대한 강제 수사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하는 셈이다.
아시아투데이는 매주 정례 조사를 시행해 발표할 예정인데, 그때마다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과 혼란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를 검증하는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그것처럼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는 인식 자체를 벗어나긴 힘들기 때문이다. 일단 프레임이 형성되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어렵다. ‘대통령 지지율’이 한국갤럽 등이 수행해 온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와 다르다는 것은 한 예다. 한국갤럽은 지난해 12월14일 윤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뒤 직무수행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데, 아시아투데이는 이전 갤럽 조사와 비교해 “윤 대통령 지지율이 껑충” 뛰었다고 해석했다. 한국갤럽은 9일 공식 리포트에서 써온 ‘직무 긍정률’을 “언론이나 정치권 등에서 흔히 ‘지지율’이라는 용어로 바꿔 써온 탓에 혼동이 배가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헌태 매시스컨설팅 대표도 13일 기자협회보에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호감도 또는 정치적 평가와 국정 수행 평가는 분리해서 공표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언론이 검증 없이 일단 쓰고 보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기자협회 등 8개 언론현업단체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의심되는 여론조사 결과를 검증 없이” 전하는 것은 “여론조사 인용 보도로 꾸민 여론 조작 행위”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여론조사를 돌리고 그 결과를 단순 유통하는 무책임한 보도들이 폭력사태를 유지하고,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언론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이준웅 교수는 “여론조사 기사를 쓴다면서 조사 방법론에 따라 조사 결과가 차이가 난다는 것도 모르고 어떻게 기사를 쓸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저질 여론조사’의 원인은 언론사가 값싼 조사를 발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국정이나 주요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 여부는 계속해서 질문하는 게 맞고, 언론사라면 자체적으로 투자를 해서 제대로 된 자료 수집을 하고 그걸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