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란성 불면증’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민주주의 위기가 한 달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란죄 피의자인 윤 대통령은 관저를 요새화하고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백골단’이란 단어도 2025년에 다시 등장했다. 9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의 주선으로 국회 소통관에 모습을 드러낸 반공청년단은 백골단을 예하부대로 두겠다고 했다.
“이게 실화냐”라는 반응이 나오는 일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하루하루 절박하게 싸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의 목소리가 공론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공간이 극도로 좁아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30 여성·성소수자 등 이번 탄핵 광장에서 도드라지고 있는 이들의 에너지가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도 있었던 이들에게 가닿았다. ‘약자가 약자를 돕는 연대’가 싹튼 것이다.
분수령은 ‘남태령 대첩’이었다. 지난해 12월21일 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가 서울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 X(엑스·옛 트위터)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이 남태령에 모여 “차 빼라”를 외쳤다. 경찰은 32시간 뒤인 이튿날 오후 차벽을 열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남태령을 넘어 민주노총 사업장 하청노동자·해고노동자 등에게도 이어졌다.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7일 단체교섭 타결을 요구하며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앞에 설치한 농성장, 1년 넘게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10~11일 구미공장에 마련된 1박2일 희망텐트촌에서도 ‘응원봉’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전농은 지난해 12월28일 광화문 집회에서 감사의 의미로 무지개떡을 돌렸다. 무지개떡에는 남태령으로 달려온 2030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2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와 연대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가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될 정도로 광장의 시민들에게 든든한 우군이 된 민주노총은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 역시 광장에 있다. 광장에선 ‘노조가 있는 직장에 들어가 노조에 가입하는 게 꿈’이라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는 민주노총이 있어야 할 자리는 탄핵 집회의 선두뿐 아니라 노조 우산 밖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 곁이라는 걸 보여준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9월부터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이들의 숙소가 있는 역삼역 인근에서 필리핀 음식인 판싯(Pancit) 나눔 행사를 열었다. 한국 잡채와 비슷한 판싯은 생일이나 명절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지난달 30일 울산 HD현대미포 조선소에서 홀로 잠수작업을 하다 익사한 하청노동자 김모씨(22) 유족을 지원하고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대책기구를 구성하기로 했다.’ 가상으로 써본 기사들이다. 탄핵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리지 않도록 이런 소식도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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