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187) 다가가야 보이는 것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눈이 서울 전역에 내렸던 지난겨울. 눈이 그친 틈을 타 인왕산에 올랐습니다. 먼저 길을 밟아 올라간 등산객들이 남긴 발자국 온기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지요. 눈 앞에 펼쳐진 설경은 짧은 수고의 보상으로 충분했습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다 힘겹게 눈을 지고 있는 나무들이 마음이 쓰여 숲길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나무는 가지뿐 아니라 기둥이 꺾여 처참하게 부러져 있었습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설경도 가까이 다가가 보니 비극이 숨어 있었습니다. 나무에겐 이보다 잔혹할 수 없음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현장에서 ‘이 정도면 됐다’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조금만 더 다가가면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올해도 현장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듣고, 묻고, 기록하기로 다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가까워져야 비로소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다가감은 때로 불편하고 어렵지만, 진실을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니까요.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