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성 불면증' 시달리는 민주공화국 시민들을 위하여

[언론 다시보기]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워터게이트 사건이란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고용한 이들이 그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D.C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 민주당 선거본부에 불법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을 말한다.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 언론은 물론 누구도 이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초기에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고, 당시 국민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분노를 야기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그의 해명이 옳다는 믿음이 대세를 이루었다. 당시 언론 매체들 역시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단순한 무단침입으로 여겼던 것이다.

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은박 비닐을 덮은 채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뒤르켐 식으로 말하면, 이 사건은 누구나 당연히 자기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속된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미국 국민들은 이 사건이 현실정치 세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진영 간의 갈등과 다툼, 음모와 풍문의 영역에 해당하는 일이라 여겼다. 미국 민주당이 이 사건을 4개월여에 걸쳐 쟁점화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80%에 이르는 대다수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진정한 위기라 생각하지 않았고, 이것이 다가올 대선에서 자신의 투표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도 그랬다. 미국인의 75%는 이 사건을 세속적인 정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흔히 말하는 나쁜 의미에서의 ‘정치’로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베트남전쟁을 전후한 1960년대를 거치며 미국 사회는 격렬한 정치적 양극화와 반목 그리고 인종차별과 흑인민권 운동, 페미니즘 등 다양한 이슈를 두고 갈등을 경험했다. 급진적 변화, 경제위기 앞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한때 매카시즘을 지지하는 등 기회주의적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해온 닉슨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이들은 닉슨이 사회 불안과 위기를 잠재우고, 안정을 희망하는 그들의 보수적 요구를 실현해줄 것이라 믿었다. 닉슨은 자신의 임기 중 쏟아진 여러 비판에 대해 좌파(리버럴)에 속한 일부 엘리트의 비판에 불과하다며 각을 세웠다. 닉슨 행정부와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비판은 바로 얼마 전 미국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재선된 대통령에게 감히 도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2년이 흐른 1974년 여름 무렵, 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여론은 완전히 변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두 기자는 계속해서 이 사건을 추적했다.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이란 민주공화국의 근본적인 체계와 도덕에 도전한, 다시 말해 미국이란 ‘국가’가 시민과 맺은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계약’, 정치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로 파괴될 수 없는 게임의 ‘규칙’을 침해한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1973년 5월부터 8월까지 계속된 워터게이트 청문회는 미국이라는 공화국의 가치와 민주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킨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공화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거대한 전시장이자 그 자체로 사회적 의례가 되었다. 청문회를 TV로 방영할 것인가의 문제는 ‘속된 세계’에 속하는 일부에게는 논쟁거리였지만, 매일 TV 브라운관 앞에 모여 앉은 시민들에게는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할 것인가 결정하는 성스러운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이런 과정들을 통해 미국 국민들은 다시 한번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시민으로 각성할 수 있었다. 언론은 모든 시민이 그들의 사회적 계급, 빈부, 지지 정당, 진영과 관계없이 합리적이며, 진실을 알게 될 때 정의롭게 행동할 것이란 공동체의 믿음을 전제했고, 법은 정의의 구현이며,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에 모든 공직자는 시민(언론)에 의해 정의와 이성의 이름으로 감시받아야 하며 국가의 어떤 권력도 이 같은 민주공화국의 규칙을 짓밟을 수 없다는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내란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일 피곤한 일상과 ‘내란성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언론 뉴스 속보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 우리 언론의 책무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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