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측은 무안국제공항 현장에서 기자들이 질서를 지키고 유가족 요구에도 잘 협조해 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동의 없는 취재가 반복됐고 유가족 항의를 받고 기사가 삭제되기도 했다. 유가족대표단이 유가족 접촉 자체를 금지해 혼란도 있었다. 유족을 배려하면서도 취재가 위축되지 않는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6일 여객기 기장의 장례식장을 취재하던 일부 취재진이 동의 없이 촬영과 녹취를 하다가 유가족에게 발견돼 거세게 항의받았다. 2일에는 한 통신사가 장례식장에서 운구 장면을 동의 없이 정면에서 촬영하고 기사로 내보내 유가족의 항의를 받고 1시간 만에 삭제했다. 희생자 중 첫 발인이라며 쓴 기사였다. 해당 언론은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언론단체가 세월호 참사 취재에 대한 반성을 계기로 2014년 만든 재난보도준칙은 동의 없는 유가족 취재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터뷰를 강요해서는 안 되고 비밀 촬영이나 녹음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피해자가 된 유가족에게 또 다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일가족 9명이 희생돼 반려견이 혼자 남은 가정의 소식이 전해지자 빈집에 취재진이 몰려와 유가족이 접근 금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전남 영광군은 지난해 12월29일 참사로 주민 9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튿날 지역 방송사와 종편 한 곳이 이 집을 찾아내 사연을 보도했다. 이후 다른 언론들이 따라 보도하겠다며 이곳에 며칠 동안 몰려들었다.
유가족대표단이 아예 유가족에 대한 접촉을 금지하면서 혼란을 겪기도 했다. 유가족대표단을 대리하는 박철 변호사는 “자신이 희생자 가족이라는 걸 주변에 어떻게 알려야 할지도 모르고, 유해를 못 찾아 사망을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취재하겠다고 하면 유가족의 마음은 헤집어진다”며 “취재에 응한 분들도 있겠지만 취재를 막아 달라는 유족 요청이 들어와 기자단에 일괄적으로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정한 취재에 대한 고민도 크다. 재난보도준칙 제정에 참여한 배정근 전 숙명여대 교수는 “피해자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도 저널리즘이 수행하는 휴머니즘의 일부”라며 “대표단이 금지했어도 그 의사를 존중하되 취재를 바라는 유족이 있다면 취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에 대한 보도는 공동체가 참사를 기억하고 유가족이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배 교수는 다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매체가 많아 유가족은 너무 많은 기자에게 시달리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어디서 보도했다고 하면 놓치지 않고 똑같은 기사를 쓰려고 하니 피해가 커진다”며 “유가족은 자신들을 기삿거리로 소모한다고 느끼고 반감이 들어 아예 접촉하지 말아 달라는 상황까지 온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배 교수는 “우리 언론은 짧은 사연에 멘트 따기 식으로 사건 초기에 기사를 쓰고 시간이 지나서는 유가족에 관심을 덜 둔다”며 “해외 주요 언론처럼 오랜 시간 관찰하고 외곽 취재를 하고 친밀감과 진정성을 형성한 뒤 유가족을 집중적으로 깊이 취재해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 피해자 보도란 무엇인지 새로운 관행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저널리즘’ 연구자인 이정애 SBS 기자도 유가족에게 기자가 먼저 신뢰를 주는 취재 방법을 제안했다. 관행 때문이 아니라 유가족을 취재하려는 목적도 저널리즘 관점에서 스스로에게 분명히 해야 한다. SBS 미래부장인 이 기자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가 만든 TF ‘언론인트라우마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이 기자는 “유족 보도는 항상 쉽지 않고 모든 상황에 맞는 정답은 없다”면서 그렇지만 “어떻게 신뢰를 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이 취재하려는 때와 유가족이 말하고 싶어 하는 시점이 맞지 않고, 누가 말하고 싶어 하는 유가족인지 알기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반대로 유가족에겐 누가 신뢰할 언론인인지 모른다는 문제도 있다고 짚었다.
이 기자는 자신의 신원과 취재 목적, 언제 어떻게 보도될지를 먼저 밝히고,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서 인터뷰할 수 있다는 점과 취재한 내용을 못 쓰게 되면 양해를 구하겠다는 점 등을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끔찍한 상황을 겪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통제력을 빼앗긴 사람에게 통제권을 돌려주는 취재 방식은 무엇일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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