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파우치’ 발언으로 용산 대통령실로부터 사장에 낙점됐다는 비판과 함께 KBS 구성원 대다수의 반대 속 취임한 박장범 KBS 사장이 6일자로 평직원까지 인사를 마무리하며 오는 9일 취임 30일을 맞게 됐다. 신임 보도본부 간부들의 뉴스 경쟁력 회복을 위한 노력, 본사 인사 등을 볼 때 직전 박민 사장 때보다는 나아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비상계엄 사태 직후 취임한 박장범 사장을 두고 “이런 정국이 아니었다면 박민과 똑같이 했을 것”이라는 비판적 시선이 기저에 깔려있다. 취임 첫날(지난해 12월10일) 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강행한 보도국장 등 4개 국장 임명을 봐서도 직전 사장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이미 나오기도 했다. 여러 KBS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박 사장에 대해 “여전히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사내 분위기를 전한 이유다.
3일 KBS 노사는 약 8개월 만에 공정방송위원회를 재개했다. 박민 체제 당시 KBS 사측은 지난해 4월 공방위를 이후로 ‘채 해병 특검법 입법청문회 유튜브 라이브 불방 건’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불방 건’ 등의 안건을 거부하며 노조의 요구에도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에 명시된 정례 공방위 개최를 무산시켜왔다.
사측이 공방위에 참여한 점은 다행이나, 내용면에서 형식적으로 자리해 시간만 때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날 공방위에서 노조 측은 ‘계엄 당일 특보가 타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고, 포고령 위주의 자막 방송을 반복했다’는 점, ‘채 상병 특검법 청문회 유튜브 라이브 불방’ 문제 등을 지적했는데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옛 보도본부장), 이민우 취재1주간 등 사측 공방위원은 “취임하기 이전 과거 내용에 대해 발언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보도본부 신임 간부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 담화 등에 대한 KBS의 비판적인 입장이 타사에 비해 부족했다’는 노조 측 지적에도 사측은 “앞으로 잘 하겠다. 지켜봐 달라”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도본부 인사만 봤을 땐 자신의 반대 진영도 기용하는 등 기자들의 시선에 신경을 쓴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장범 사장이 임명한 정인성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은 취임 전부터 기자들이 강하게 요구해온 탄핵 정국 관련 특별취재팀을 구성했고, 명태균 게이트 관련 단독 보도 3건을 ‘9시 뉴스’에서 톱 뉴스로 배치하는 등 KBS 뉴스 경쟁력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일부 기자들의 시각이 있다. 다만 탄핵 관련 특별취재팀은 2일 해체됐는데, ‘팀에서 해당 사안을 전담하기보다 지금은 각 부서에서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팀원 기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KBS 기자는 보도본부 인사에 대해 “무색무취하고 후배들의 저항이 적은 사람들을 전진 배치한 건데, 부정 선거를 얘기하고 북한 뉴스만 강조한 전임 보도본부 간부들 정도는 아닌 것”이라며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 잡아서 비판하기 어려운 애매한 지점에 있는 사람을 기용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KBS창원총국에서 근무하는 한 기자는 명태균 게이트 단독 보도에 대해 “(전임 보도국장 당시) 타사에 비해 부족한 인력, 본사의 9시 뉴스 배치 순서에 대해 아쉬움을 많이 토로해 왔다”며 “지역 뉴스를 통해선 그동안 저희가 계속 의미 있는 보도를 해오고 있어 자부심이 있었는데 최근 본사에서 톱뉴스로 내보내며 주목을 더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민 사장 체제에서 KBS의 신뢰도 하락의 주범으로 꼽힌 인사들을 자회사 임원, 지역총국장으로 발령 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비판 성명이 나왔다. 박장범 사장은 최재현 전 뉴스룸국장을 KBS미디어 감사로, 박진현 전 시사제작국장을 부산총국장으로 발령했는데 KBS본부는 6일 성명에서 최재현 감사에 대해 “명태균 게이트 부실 보도 등 임기 내내 윤석열 정권과 여당에 유리한 편파적인 뉴스 생산에 힘을 쏟아온 인물”이라고 했고, 박진현 총국장에 대해선 “극우 유튜버 고성국을 KBS 대표 시사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앉힌 장본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KBS본부는 “이번 인사를 보며 KBS 정상화의 첫 걸음은 파우치 박의 퇴진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며 “지금이라도 구체제의 문제적 인사들에 대한 인사를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편성본부, 교양다큐센터 등 인사를 두고도 반발 분위기가 감지된다. 조애진 KBS본부 수석부위원장은 “박민 시절 인사가 많이 유임됐는데 시사교양국장이었던 최성민 전 국장이 편성본부장이 된 점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신료라는 공적 재원 문제부터 모든 것이 벼랑 끝으로 지금 몰려 있고 탄핵 정국이 어느 정도 지나가 대한민국은 평온을 찾는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풍랑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KBS가 거듭나려면 지난 1년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어디로 나아갈지 재정립해야 되는데 전혀 반성했다고 보이지 않고 다만 숨죽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미 ‘파우치 박’으로 이미지가 각인된 박장범 사장으로는 KBS가 마주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구성원의 우려도 여전하다. 권준용 KBS 같이노조 위원장은 “박장범 사장이 있는 한 우리가 잘하든 못하든 윤석열 대통령 대담 때 이미지가 상징적이라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한다 해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최소한 지금이라도 임명동의제를 실시해 지금 국장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지 구성원들이 듣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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