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사태다.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이 발부한 것도, 경호처가 물리력을 동원해 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도 헌정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결국, 공조수사본부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재청구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일련의 사태를 보도하는 공영방송 KBS 보도가 눈과 귀를 의심케 하고 있다.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KBS는 특보를 열었다. 종일 중계방송된 특보 영상은 영장 집행 진행과 무산 과정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데 그쳤다. 메인뉴스인 ‘뉴스9’도 다를 바 없었다. 사태의 정리와 상황 설명에 이어 공수처와 윤 대통령 변호인, 경호처의 반응을 단순 전달하고 관저 앞 찬반 양측 집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야의 입장을 나열했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거부와 체포 방해는 정당한 법 집행을 방해하며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임에도 제대로 된 비판은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공수처와 경호처 양쪽의 주장을 대등하게 같은 비중으로 다룸으로써 체포영장이 잘못 발부된 양 호도하는 효과만 냈다. 여야의 상반된 입장을 보도하면서 최소한 논란이나 파문의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언급하지도 않았다.
영장 발부와 집행에 대해 경호처와 여당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면 주장의 근거가 합당한지 따져 물어야 했다. 체포 찬반 집회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각각 얼마나 사실에 부합한 지 팩트체크를 해야 옳았다. 여야 입장이 맞섰다면 어느 쪽 논리가 더 타당한지 분석해 제시해야 했다. KBS 뉴스에는 이런 게 없었다.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에 대한 언사에 대해서만큼은 가차 없는 비판이 쏟아진다. 독일은 나치즘에 대한 옹호는 표현의 자유로 용인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어떠했나. 지난해 12월3일, 생방송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되고 기본적인 선포 요건조차 못 갖춘 반헌법적 조치에 국민 대다수가 경악했다. 내란 행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범죄 행각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후 담화에서는 계엄 발동은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둥, 국회 소집도 방해하지 않고 소규모 군을 투입해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다며 거짓말을 늘어놨다.
상식을 갖춘 언론이라면 음주 운전 사고를 내고 음주 운전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를 대변할 수 없을 것이다. 내란 행위를 직접 보여준 것도 모자라 모의 과정이 수사로 속속 드러나 거짓말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기계적 중립’이란 명제 뒤에 숨어 체포 찬반 집회와 상반된 여야 주장을 반복하는 게 과연 공영방송의 책무를 지키는 것인가?
저널리즘의 본질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출발점은 사실 확인이라는 점을 모르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 확인된 양측의 입장을 대등하게 보여주는 게 저널리즘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균형성이란 명제는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양측이 동등한 무게를 갖지 않는다면 공정하지 않고 양쪽을 모두 실어주는 양자주의는 정치적 속기가 되기에 십상이어서 언론은 거짓말이나 과장된 메시지의 전달자가 되고 만다(<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중에서). 윤 대통령 체포영장 관련 KBS 뉴스가 꼭 그러한 오류를 되풀이하고 있다. 거짓 주장으로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내란 동조 세력의 확성기 노릇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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