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희생자 유가족 등이 겪는 트라우마를 살펴온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참사 현장을 취재하는 언론인을 위한 트라우마 대처법을 특별히 조언하고 나섰다.
정찬승 이사는 4일 본보 기자에 메시지를 보내 “항공기 사고 직후부터 기자분들 인터뷰 요청을 받고 깊게 이야기를 나누니 유가족뿐 아니라 기자 본인도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고 계신 것을 알게 됐다. 특히 현장에 다녀오시거나 아직 머물고 계신 분은 더욱 그렇다”면서 ‘항공 재난을 취재하는 언론인을 위한 정신건강 안내’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트라우마는 인지하고 간단한 대처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정 이사는 자신의 브런치에 작성한 해당 글에서 이번 참사에 대해 “생존자 구조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매우 적고, 진상 규명 논쟁, 보상 문제, 미흡한 대처에 대한 비난, 대중의 혐오 반응 등 부정적인 측면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격과 비탄에 빠진 유족을 대상으로 취재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심하게는 “기자로서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도덕적 상해”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정 이사는 “여러분이 하는 일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태원 참사에서 딸을 잃은 어머니가 트라우마 분야 학술대회에 참석해서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람들이 기자를 비난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마음이 너무 괴로운데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을 때, 내 이야기를 그렇게 몇 시간이고 잠잠히 들어준 사람은 기자들밖에 없었어요. 처음에는 인터뷰를 안 하려던 다른 유가족들도 나중에는 기자들을 만나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유가족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
기자들의 ‘듣는’ 행위가 유가족에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 과정에서 ‘2차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정 이사는 “트라우마를 보고 들으며, 마치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감정 반응을 일으켜 이에 압도될 수 있다”면서 “원래는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나 상담사가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한다고 보고됐지만, 충격적인 사건과 생존자를 자세히 취재하는 언론인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특히 재난 현장에 머물며 유족과 친밀한 관계를 쌓은 경우 더욱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며, 참사와 개인적인 연결점이 있는 경우에도 2차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정 이사는 “트라우마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건에 거리를 두고 개인적인 시간과 활동을 가지라고 하지만, 이미 몰입에 빠져든 경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으며 매우 힘든 감정에 휩싸이고 죄책감까지 들기도 한다”면서 “이럴 때는 오히려 더욱 2차 트라우마에 주의하라는 신호로 인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라우마는 부정한다고 없어지거나 극복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정서적 반응을 인정하고 꺼내놓는 태도”가 회복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정 이사는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라우마와 그 영향에 대해 이해하고, 동료와 대화하고 서로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인은 회복 탄력성이 매우 높다”면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긍지, 직업적 독립성,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줄 아는 능력, 자사·타사를 가리지 않는 서로 돕는 팀워크는 회복 탄력성의 든든한 바탕”이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인의 트라우마 대응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다트 센터의 ‘뉴스 미디어를 위한 자기 관리 팁’ 자료를 활용·보완한 ‘재난 현장을 취재하는 뉴스 미디어를 위한 정신건강 가이드’도 소개했다. 업무 전/업무 중/업무 종료 후 등 단계별로 나뉜 대응 가이드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역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충분한 휴식과 대화다. 트라우마를 목격한 직후나 업무 중에 현기증, 불면증, 무력감 등을 느껴 힘들거나 이러한 증상이 지속된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정 이사는 또 재난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찰, 소방관, 응급구조대, 상담사, 의료진, 행정직 등 현장 대응팀은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는 3차 재난 경험자”로서 “업무 전, 업무 중, 업무 후에 트라우마나 소진에 대한 대비와 회복을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면서 “여기에 언론인이 포함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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