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 오보

[언론 다시보기]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사무실에 들어서면 부랴부랴 컴퓨터부터 켠다. 출근 체크하고 난 후 그룹웨어에 접속해 오늘자 뉴브(‘뉴스브리핑’을 이렇게 부른다)를 살펴본다. 취합된 기사들은 위원회 관련, 유관기관 동향, 미디어 일반, 언론법제 등으로 잘 분류되어 있다. 위원회 관련 카테고리에서 누가, 어떤 매체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는 기사를 접한다. 사건 접수 담당 부서에 메신저로 뉴브에 뜬 사건에 관해 묻는다. 웬걸, 사건이 아직 접수되지 않았단다. 그렇다면 방금 본 기사는 ‘오보’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위원회에서 근무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접하는 상황이다.

언론중재위원회 홈페이지.

‘제소했다’는 유의 기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취재원이 국가기관·대기업·정치인·연예인 등으로 대체로 유력자다. 유력자의 말이어서 기사화되는 것이다. 제소의 대상은 당연히 불리한 기사를 쓴 매체다. 그러니 ‘제소했다’라고 말하는 취재원의 의도는 비교적 명확하다. 비판적 기사에 견제구를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후속 보도를 차단하고자 함이다. ‘제소했다’라고 말하면 자신의 말을 기사화하는 언론의 생리를 취재원은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제소했다’라는 기사가 나간 후 며칠 안에 정말 사건은 접수된다. 보도 시점에는 오보였으나 이로써 기사 내용의 하자는 말끔히 치유된다. 어쨌든 접수되었으니까 말이다. ‘한시적 오보’라는 단어가 적합해 보이는 이런 기사에 별문제는 없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런 것도 오보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오류가 이미 해소되어 기사를 문제 삼을 실익이 별로 없다. 또 제소 여부가 기사의 핵심이 아니라는 반박도 가능하다. 취재원 발언의 핵심은 제소 대상으로 삼은 기사의 허위성 내지 편파성 지적에 있다는 것이다. 기사의 문제점을 논하고 있는데 제소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제소 시점 따위는 기사의 중요 부분이 아니라는 말에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점은 그냥 정확하게 ‘제소할 예정’이라 말하지 않는 이유다. 적어도 책임감 있는 취재원 내지 언론이라면 배달을 채근하는 주문자의 전화에 “출발했습니다”라고 응수하는 음식점 사장님의 모습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한시적 오보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용’의 문제다. 해당 기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취재원의 발언을 직간접적으로 전하는 인용 형식을 취한다. 이른바 ‘저널리즘의 객관주의 원칙’에 따른 기사 쓰기를 실천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객관주의는 기자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며 그러한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객관주의가 취재원 발언 내용의 오류로부터 언론을 면책시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굳이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언급하지 않아도 언론에는 취재원 발언 내용의 정확성 내지 진실성을 검증하고 확인할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제소했다’는 해당 기관에 전화 한 통 해보면 쉽게 해소될 일인데 이것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보에 대해 언론은 어떻게 항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제소했다’는 취재원의 발언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데에서 생기는 문제점으로 ‘언론플레이’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제소했다”라고 말하는 취재원의 의도는 비판 보도를 입막음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제소했고, 오보이니 다른 언론들은 유사한 보도를 하지 말라는 당부도 취재원은 덧붙인다. 위축 효과에 예민한 것이 언론이다. 2009년 언론중재법 개정 당시, 조정신청의 대상이 된 포털기사에 ‘이 기사에 대해서는 조정이 진행 중입니다’라는 표시를 달게 했을 때 언론은 딱지 붙이기, 모욕주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것과 ‘제소했다’는 유의 기사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소했다 보도하는 기자들은 취재원의 의도대로 동료의 기사에 일종의 딱지를 붙이고 있는 셈이다.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해결방안은 단순하다. “제소했다”는 발언이 정말 뉴스 가치가 있는지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뉴스 가치가 있어 보도한다면 정말 제소한 것이 맞는지 해당 기관에 확인해야 한다. 취재원 발언 내용의 정확성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내지 검증 의무가 언론에는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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