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또 대형참사, 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유념" 공지]
제주항공 사고 초기 폭발장면 등 반복 실책
현장서 무리한 취재 지양… 풀 취재 권고
보도 유의사항 발표 후부터 변화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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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국내 최악의 항공기 사고로 기록된 대형 참사에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매우 큰 상태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를 경험한 사회에서 국내 언론은 다시금 비극적 재난 소식을 전해야 하는 불가피한 역할을 맡게 됐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 전반의 트라우마를 감안한 신중한 태도의 보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고원인 규명에 보다 면밀히 접근하고 결국 기존 문제를 개선해 내는 것이야말로 희생자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고 그들을 제대로 추모하는 우리의, 언론의 온당한 방식이란 점에서 과제가 무겁다.

탑승객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가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 착륙을 시도하다 폭발하며 179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 전반의 트라우마를 감안한 신중한 보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진은 12월30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모습. /뉴시스

12월29일 오전 타이 방콕발 제주항공 7C 2216편 항공기가 무안공항 착륙을 시도하다 폭발하는 참사가 벌어지며 언론에선 긴급뉴스특보, 속보가 잇따랐다. 사고 초기 주요 방송사에선 동체 착륙을 하려던 여객기가 공항 외벽과 충돌해 폭발하는 장면을 반복 노출하는 등 오류를 범했다. 탑승객 명단이 기록된 문서를 촬영, 일부 정보만 모자이크 처리해 공개하며 희생자 신상을 노출한 매체, 구조자 수 오보를 낸 언론사도 있었다. 자칫 과거 참사 당시 속보경쟁, 과열된 취재경쟁이 재연되며 ‘보도참사’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날 오후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취재·보도 유의사항’을 긴급발표한 후 이 같은 언론보도에선 변화가 감지됐다. 두 단체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장면”의 노출 혹은 반복사용이 되지 않도록 현장 기자들과 영상편집자, 보도 책임자들에게 당부했다. “무리한 접근, 취재진 간의 과열경쟁을 피하도록 하며 필요할 경우 풀 취재 권고”,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 표현을 기사나 제목에 사용하지 않도록 유의”, “정확한 보도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본인과 가족, 시청자들의 심리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고려”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한국기자협회도 취재·보도 과정에서 ‘재난보도준칙’을 유념해 줄 것을 기자들에게 긴급 공지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5개 언론단체 등이 공동 제정한 준칙은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두고 있다. 실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 등 현장에선 무리한 취재를 지양하고 유가족, 주변 사람의 뜻을 존중해야한다는 준칙 등이 상당히 지켜지는 상태다.


사고 관련 수습 자체가 다 되지 못한 지금,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고려한 언론보도, 사회 전반의 세심한 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트라우마에서 제일 중요한 건 주도권, 자율권의 회복이다. 취재 참여여부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 기사를 통해 잘 대변되는 경험 등이 유가족들의 회복에선 매우 중요하다”며 “요즘 언론 인터뷰는 강압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좋아졌다고 평가한다. 다만 충돌장면의 반복적 송출, 일부 자극적 표현, 재난 초기부터 나온 보상금 기사 등은 개선 지점으로 봤다”고 했다.


그는 이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런 사고에서 회복하기 위해선 다 같이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언론과 사회에서 본인들 기준으로 ‘이만하면 됐지’ 회복을 강요할 바에는 아무 말 안하는 게 낫다. 이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한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도움과 배려를 받을 수 있어야 내가 사는 사회를 훨씬 안전하다고 여기지 않겠나. 트라우마에 강한 사회를 위해 언론에서도 유념할 자세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취재과정이나 관련 보도에 의한 간접 경험으로 ‘2차 트라우마’를 겪는 일에 대비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022년 내놓은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 등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 당시 전문가 추진단으로 참여한 권영철 CBS 대기자는 “30여년 전 열차 사고를 취재하다 본 시신이 아직도 가끔씩 기억난다. 유족의 반응, 처참한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트라우마가 되는데 절대 혼자 감내하려 해선 안 된다. 선배 기자, 데스크에 꼭 알리고 전문의와 상담하는 과정을 거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사고발생과 희생자 수습 과정 등에 집중됐던 초기 국면을 지나 언론보도의 흐름은 사고원인 규명에 방점을 둔 모양새다. ‘버드 스트라이크’, ‘랜딩 기어 이상’, ‘짧은 활주로’ 같은 여러 요인이 언론에서 지목되는 가운데 일부는 무리한 추측성 보도를 내놓으며 우려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보도로 통상 항공기 사고 원인 규명에 소요되는 수개월 이상의 블랙박스 해독 기간이 단축될 리도 없고, 당장 책임자를 가려낸다고 사회가 곧장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시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언론은 정확하고 신중하게 보도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참사로 인한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언론과 우리 사회는 막중한 책임을 또 다시 짊어지게 됐다. 서수민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선정성과 취재 경쟁이란 부분을 이번 국면에서 주목했는데, 차분하게 보도가 된 편이라 보고 있다. 특히 당장의 속보 경쟁이 의미가 없고, (유가족 등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언론인들이 인식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9·11 테러 발생 23년이 됐는데 미국 언론에선 해마다 굉장한 자원과 노력을 투입해 해당 사건을 조명하고, 그로 인한 미국 사회와 전 세계 정치·경제 변화에 대해 계속 의미 부여를 한다. 결국 죽은 사람들은 그렇게 추모될 수밖에 없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님들이 가장 원한 것도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져 다신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였을 게다. 아직 이르지만 그런 작업을 언론이 앞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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