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24시 취재… '브리핑 홀대' 비판도

[달라진 참사취재, 질서지킨 기자들]
쪽잠 3~4시간 자며 공항서 철야
"브리핑 없어…현장서 정보 배제"

  • 페이스북
  • 트위치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질서 있게 취재했다. 급히 파견돼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도 철야 취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편으론 당국의 브리핑이 정작 사고 현장에서는 이뤄지지 않아 재난보도에 지장을 준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연취재 경쟁 지양, 가급적 공동 인터뷰
12월30일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제주항공 여객기 2216편 추락 사고’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전날 참사에서 수습된 이들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140명의 위패가 안치됐다. 기자들은 취재 질서를 지켰다. 참사 현장에서 문제 된 무리한 경쟁은 찾기 어려웠다.

지난해 12월30일 새벽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2층에서 당국이 유가족을 상대로 브리핑을 열고 있다. /무안=박성동 기자

합동분향소 분위기는 차분했다. 단상 밖으로 촬영 지정선이 빨간색 띠로 둘러쳐졌다. 기자들은 시민들이 분향하는 모습을 조용히 취재했다. 촬영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몇 기자는 취재에 앞서 조문객의 한 명으로 분향했다.


무안군 소속 직원이 위패를 정면에서 촬영하지 못하게 기자들을 단상 옆으로 물렸다. “인터넷에 이름이 한번 노출되면 그 주변에는 평생 상처로 남는다”며 위패를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사로 내보내기 전 편집하면 문제 되지 않겠지만 기자들은 항변하기보다 요청에 따랐다. 통제되기 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흐림 처리했다.


기자들은 사연을 취재하려고 열을 올리지 않았다. 분향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에게 희생자와 어떤 관계인지, 심경이 어떤지 질문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단독 취재보다 되도록 공동으로 인터뷰했다. 한두 시간 만에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른 의원들과 함께 조문했지만 기자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분향소 밖에서 정치 일정을 묻는 등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아침부터 분향소를 마련하며 봉사한 무안군 부녀회의 한 회원은 “지금은 애도 기간인데 정치인들이 왔다고 몰려가서 인터뷰하고 조문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것 같다”며 “기자들이 질서 있었고 친절했다. 궁금한 건 예의 있게 물어봤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수습기자는 “회사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져오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전이 제일이라고 강조했다”며 “선배 기자와 같이 인터뷰하다가 예민한 내용이 나오면 인터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처음에는 소속 신문사 이름을 듣고 유족들이 인터뷰를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명함을 받을 사람은 받아 갔고 거절하기도 했지만 공격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기자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신분을 드러내고 다니며 취재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사고 소식 듣고 곧장 짐 싸… 현장 언론 브리핑 없어 답답함도
기자들은 사고가 발생한 전날부터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며 취재했다. 대체로 서너 시간씩 쪽잠을 자며 며칠 동안 취재를 이어갔다. 12월29일 아침 사고 소식을 듣고 곧장 짐을 싸 현장에 도착했다는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새벽 4시까지 13시간 연속 근무했다.


이 기자는 “오는 길에 재난보도준칙을 읽으면서 왔다.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발표한 유의사항도 읽었다”며 “무리한 취재를 하지 않으려고 제일 노력했다”고 말했다.


지역을 넘어 취재하기도 했다. 경기도 지역신문의 한 기자는 29일 오후 늦게 취재를 결정하면서 자정이 다 된 무렵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워낙 전국적인 사안이라 지역에서도 취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탑승자 중 경기도민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급히 취재가 결정된 탓에 준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그는 “회사에서 일단 출발하라고 했는데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고 상의했지만 그냥 가라고 했다”며 “3일 치 옷을 챙겨 왔는데 길어지면 옷을 빨아서 입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장 기자들 사이에선 답답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고 관련 정기 브리핑은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에서 이뤄지고 정작 무안공항 현장에서는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국토부 산하 부산지방항공청을 중심으로 제주항공 등이 유가족을 상대로만 수시로 브리핑을 열고 있다.


한 기자는 “유가족 대표가 오정보를 쓰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브리핑을 안 하니 조각조각 귀동냥으로 정보를 받아서 쓰고 있다”며 “유가족 상대로 브리핑하는 낌새가 느껴지면 기자들이 몰려 들었다가 안 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희생자가 몇 명 남았는지 같은 정보가 오히려 유족이 있는 무안공항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남은 신원 미확인자가 12명이라는 보도가 30일 밤사이 서울 지역에서 나왔다가 이튿날 새벽에는 다시 15명이라고 보도됐다. 31일 오전 유가족 측은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그제야 국토부는 미확인자가 5명이라고 밝혔다. 이마저 공식 발표는 아니었다.

무안=박성동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