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 계엄 사태’의 핵심 피의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측이 12월26일 기자회견을 열며 일부 매체의 취재를 제한해 논란을 빚었다. 권력과 언론의 갈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중대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제 입맛에 맞는 언론에만 취재를 허락하겠다는 의사를 당당히 드러낸 것은 초유의 사태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도전인 것은 물론 국민의 정당한 알 권리까지 침해하는 이 행위를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가 곧장 취재 제한 철회를 요구하며 다른 언론에도 ‘취재 전면 거부’ 연대를 촉구한 것도 이 행위가 불러올 후폭풍을 우려해서일 테다. 권력자가 비판적 언론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언론의 감시 기능은 무력화하고 뉴스의 힘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권력자의 ‘선별적 언론 대응’은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는 점에서도 경계심이 필요하다.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교묘한 언론 탄압의 선봉장이다. 첫 재임 때부터 주류 언론에 대해 고소·고발을 퍼부었던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대선에서는 주류 언론은 거부하고 자신에 우호적인 팟캐스트만 골라 출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식부터 극우 유튜버를 초청했고, 해외 순방에 나서며 일부 매체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자신에 긍정적인 언론사에는 단독 인터뷰라는 특혜를 줬고 비판 언론에는 ‘가짜뉴스’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각국 수장들이 이러니 ‘언론 패싱’은 어느새 당연해졌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조차 듣기 싫은 질문은 안 들을 권리가 있다는 듯 행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황당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최근 우려되는 언론계 내부의 변화가 있다. 노골적으로 정파성을 드러내는 매체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언론계 전반에 걸쳐 똑같은 사실관계를 두고도 정반대의 논평과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늘어나고, 같은 진영은 옹호하는 반면 상대는 지나치게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정파적 보도는 시민의 혼란을 부르고 언론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실제 미국 주류 언론이 독자의 신뢰를 크게 잃었던 계기로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승부에서 과도한 정파성을 드러냈던 일이 꼽힌다. 대선 기간 내내 힐러리가 이길 것처럼 보도했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고 언론에 대한 신뢰가 단숨에 무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많은 언론인들이 트럼프 당선에 일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목표가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압도한 셈이다.
물론 공동선과 객관성 중 공동선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파성에 매몰되는 것은 언론 탄압을 일삼는 권력자들에 ‘적대 세력’을 배제할 빌미를 주는 일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언론 탄압과 정파성은 서로를 부정 강화하는 일종의 악순환 관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정치권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우리도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한다.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 깊이 있는 취재와 분석을 통해 점차 진화하는 언론 탄압을 뚫고 시민들에 다가가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럴 때야 비로소 우리를 ‘언론 패싱’이라는 치욕에서 벗어나게끔 해줄 독자라는 든든한 우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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