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참사 취재, 질서 지키고 사연취재 경쟁 지양
"현장 온 기자들 친절하고 예의 있었다"
유족 대표단도 개별 아닌 공동취재만 응하기로
"회사서도 인터뷰 강요 안해… 안전 강조"
30일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제주항공 여객기 2216편 추락 사고’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전날 참사에서 수습된 이들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140명의 위패가 안치됐다. 기자들은 취재 질서를 지켰다. 참사 현장에서 문제 된 무리한 경쟁은 찾기 어려웠다.
오전 11시 차려진 합동분향소 분위기는 차분했다. 단상 밖으로 촬영 지정선이 빨간색 띠로 둘러쳐졌다. 기자들은 시민들이 분향하는 모습을 조용히 취재했다. 촬영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몇 기자는 취재에 앞서 조문객의 한 명으로 분향했다.
무안군 소속 직원이 위패를 정면에서 촬영하지 못하게 기자들을 단상 옆으로 물렸다. “인터넷에 이름이 한번 노출되면 그 주변에는 평생 상처로 남는다”며 위패를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사로 내보내기 전 편집하면 문제 되지 않겠지만 기자들은 항변하기보다 요청에 따랐다. 통제되기 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은 흐림 처리했다.
기자들은 사연을 취재하려고 열을 올리지 않았다. 분향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에게 희생자와 어떤 관계인지, 심경이 어떤지 질문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단독 취재보다 되도록 공동으로 인터뷰했다. 한두 시간 만에 서로 협력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단체가 제정한 재난보도준칙 10조는 무리한 보도 경쟁을 자제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28조 등은 준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언론사 사이 공동의 협력도 장려한다. 재난보도의 목적은 정확한 정보로 혼란이나 불안을 막고 피해자의 회복 등을 돕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다른 핵심 의원들과 함께 조문했지만 기자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도 했다. 분향소 밖에서 정치 일정을 묻는 등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분향소를 찾았다가 곧장 떠났다.
이날 오전 8시부터 분향소를 마련하며 봉사한 무안군 부녀회의 한 회원은 “지금은 애도 기간인데 정치인들이 왔다고 몰려가서 인터뷰하고 조문에 집중하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것 같다”며 “기자들이 질서 있었고 친절했다. 궁금한 건 예의 있게 물어봤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수습기자는 “회사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져오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전이 제일이라고 강조했다”며 “선배 기자와 같이 인터뷰하다가 예민한 내용이 나오면 인터뷰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처음에는 소속 신문사 이름을 듣고 유족들이 인터뷰를 거절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며 “명함을 받을 사람은 받아 갔고 거절하기도 했지만 공격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기자들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신분을 드러내고 다니며 취재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기자들이 인터뷰 노력에 소극적인 건 아니다. 전날 새벽까지 유족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결국 못 했다는 다른 기자는 “기자들의 소속 매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유족의 심리 상태가 아직 인터뷰할 때가 아닌 듯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그럼에도 인터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벌써 여러 음모론이 생기고 있는데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이고, 우리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무안공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공동취재 방식으로 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한신 유가족 대표는 “기자분들 명함을 오늘 많이 받았지만 누구에게도 연락한 적이 없다”며 “특정 언론사라고 해서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기자간담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분들을 늦게 찾아뵙게 돼 죄송하다”며 덧붙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처음으로 대표단을 꾸렸다. 유족은 무안공항 1층에 분향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무안종합스포츠파크 합동분향소는 찾지 않았다.
무안=박성동 기자 dong@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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