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1시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모든 불을 밝혀 놓은 이곳에 잠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공항 1층과 2층에 대한적십자사와 대한주택건설협회 등이 재난구호 텐트를 설치했지만 전날 벌어진 제주항공 여객기 2216편 추락 사고의 유가족은 밖으로 나와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청록색 민방위복을 입은 공무원들과 소방 관계자, 제주항공 신분증을 멘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사이에 기자들도 있었다. 방송 특보도 끝난 시각 밤을 새워 취재 중이었다. 새벽 사이 수시로 열리는 브리핑과 사망자 발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오후 3시쯤 현장에 도착했다는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이날 새벽 4시까지 13시간 근무를 이어갔다. 이 기자는 “특보 때문에 아침 방송이 오전 6시에서 한 시간 당겨졌다”며 “아침 중계를 위해 원고를 써서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는 길에 재난보도준칙을 읽으면서 왔다. 어제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영상기자협회가 발표한 유의사항도 읽었다”며 “무리한 취재를 하지 않으려고 제일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족과 취재진 사이 긴장은 거의 없었다.
지역을 넘어 취재하기도 했다. 경기도 지역신문의 한 기자는 오후 늦게 취재를 결정하면서 자정이 다 된 무렵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워낙 전국적인 사안이라 지역에서도 취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탑승자 중 경기도민이 있는 것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급히 취재를 결정하면서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회사에서 일단 출발하라고 했는데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고 상의했지만 그냥 가라고 했다”며 “숙소도 이제 찾아봐야 한다. 3일 치 옷을 챙겨 왔는데 길어지면 옷을 빨아서 입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역 방송사에서 구호 물품 봉사에 나서기도 했다. 라디오 방송사인 목포극동방송은 물과 라면, 차, 담요, 마스크, 핫팩, 생리대, 수건 등을 500여개씩 챙겨 오후 2시 반쯤부터 새벽 내내 자리를 지켰다. 일부 품목은 지역 시민단체인 ‘목포를 만드는 사람들’이 방송사에 지원하기도 했다.
총무부 직원 민병익씨는 “지역 방송사다 보니 지역과 관계가 밀접하다. 피해자 가운데 방송 가족들도 있을 테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이 있다”며 “방송사도 지역의 일원으로서 큰일이 생기면 힘든 순간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작정 취재에 나선 다른 기자들처럼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무안공항 대합실에서는 새벽 3시까지 사고를 수습하는 정부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사이 활주로 임시 영안실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의 이름도 수시로 불렸다. 사망자 179명 중 140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유족은 작게 탄식하며 숨죽여 울었다.
새벽 사이 비행기에 탑승했던 KBS광주방송총국 기자의 사망도 공식 확인됐다. 이 기자는 남편인 목포MBC PD와 함께 방콕을 여행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유가족은 수백명이 모여 대표단 구성을 논의했다. 이들은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면 이대로 흩어지게 된다”며 블랙박스 내용이 확인될 때까지 연대하자고 제안했다. 전날인 29일 오전 9시쯤 발생한 조류 충돌이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이후 랜딩기어는 왜 펼쳐지지 않았는지, 공항 외벽과 충돌하기 전까지 관제탑과 어떤 내용으로 교신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무안=박성동 기자 dong@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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