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는 왜 신문에 3분의1만 실렸나

1980년 전남도청 검열관실 군인들 '빨간펜' 보도검열
광주·전남언론인회, 옛 도청 보도검열관실 복원 촉구
12·3 계엄이 환기한 검열 악몽… "위험성 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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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 피눈물을 흘리는 /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80년 5월 광주의 처참한 죽음을 고발한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1980년 6월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에 실렸다. 그러나 본문 105행에 달하는 이 시는 곳곳이 난도질을 당했다. 제목에서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삭제됐고, 본문 35행만 살아남았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 보도검열관실 군인들이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검열한 흔적. 곳곳에 빨간펜으로 삭제를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사진 왼쪽). 1980년 6월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에 실린 이 시는 제목에서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삭제되고, 본문 109행 중 35행만 살아남았다. /광주전남언론인회 제공

검열 때문이었다. 당시 전남도청 별관 2층 농정국장 사무실에는 ‘계엄사령부 전남북계엄분소 보도검열관실’이 있었다. 보도검열관실에 상주한 장교 3~4명과 보안대 파견 상사는 광주·전남지역 신문과 방송, 잡지에 실린 모든 기사를 검열했다.

군인들은 신문 지면 초안이나 방송원고를 검열해 삭제할 부분을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하고 ‘보도검토필’ 도장을 찍어줬다. 이 도장이 있어야 보도할 수 있었고, “전두환 규탄”, “신군부 물러가라” 등이 들어간 기사는 무자비하게 삭제됐다. 이 보도검열관실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1981년 1월24일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존속했다.

1980년 5월 당시 보도검열관실에 검열을 받으러 다녔던 전남매일신문, 전남일보, 전일방송 기자들을 중심으로 옛 전남도청 보도검열관실 복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원형 복원을 추진 중인 옛 전남도청에 보도검열관실을 복원해 44년 전 검열의 시대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전남언론인회가 옛 전남도청 보도검열관실 복원을 건의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보도검열관실을 입증할 사진이 없다고 난색을 표한 문체부는 최근 보도검열관실 공간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사실상 복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광주·전남언론인회에 따르면 문체부는 보도검열관실이 있던 자리에 통로가 만들어지면서 원형 복원이 어렵다며 다른 곳에 별도 공간을 만들어 검열된 신문 등을 게시할 방침이다.

광주전남언론인회 김성 회장(사진 가운데)을 비롯한 회원들이 26일 오후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980년 당시 전남도청에 설치됐던 보도검열관실 원형 복원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광주전남언론인회는 26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간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문화부(문체부)가 형식적인 전시만 할 뜻임을 내비쳤다”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없어도 학살을 소개할 방법은 많이 있다고 둘러대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다.

광주전남언론인회는 “12·3 내란사태는 민주주의의 허약한 담장을 뚫고 보도검열 만행이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보도검열관실을 복원해 보도검열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옛 전남도청 별관 2층 전체를 보도검열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재배치하고 △정부 차원에서 관련 기관에 대해 보도검열과 관련한 자료를 조사·수집할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문체부에 촉구했다.

광주전남언론인회는 80년 당시 보도검열관실에 검열을 받으러 다녔던 기자들의 진술서, 검열관실 내부 배치도, 삭제된 기사, 5·18 이후 검열관실과 관련된 언론보도 등 여러 기초 자료를 문체부에 제출하고 원형 복원을 건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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