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체포와 구속을 촉구하며 경남과 전남 등지에서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행진하던 농민들이 21일 서울 진입을 앞두고 남태령에서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혔다.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지자 광화문 등지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 등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경찰을 향해 “차 빼라!”고 외치며 농민들과 함께 밤샘 시위를 벌였다. 결국, 야당 정치인 등이 중재에 나서면서 대치는 28시간 만에 풀렸고 트랙터 10대는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통령 관저 앞까지 나아갔다. 이날 시위에는 ‘남태령 대첩’이란 이름이 붙었다.
농민들의 도심 ‘트랙터 시위’가 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경찰 저지에 부당함을 느껴 한파를 뚫고 달려간 시민들, 온라인으로 집회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응원하며 물품 후원 등으로 마음을 보탠 연대의 풍경은 분명 보기 드문 것이었다. 23일 아침 신문들이 주말 동안 있었던 이 일을 1면 사진 등으로 소개하며 비중 있게 다룬 것도 단지 대통령 관저 앞에 등장한 트랙터의 이질적인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한겨레 “농민 운동에 이토록 뜨거운 연대, SNS의 힘”
오늘 아침 전국 단위 주요 종합일간지는 대부분 이 트랙터 시위 장면을 1면 등에 보도했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는 1면에 사진을 실었고, 동아일보와 세계일보는 각각 12면, 10면에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12면에 사진기사로 보도하며 탄핵집회를 응원하는 연예인 관련 기사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다.
한겨레는 1면에 사진과 함께 실은 기사에서 “좀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농민 운동에 이토록 뜨거운 연대가 쏠린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의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날(21일) 낮 엑스(옛 트위터)에 경찰이 트랙터 운전자를 강제로 끌어내고 강경 진압하는 영상이 공유되면서 많은 시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이미 14일 여의도 집회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상여투쟁을 시작으로 엑스에서 공유되던 전농 소식을 지켜보던 이들에게 “응원봉을 들고 남태령으로 ‘마중’ 나가는 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향 “계엄 후 달라진 집회 특성…소수자가 광장 중심에”
경향신문은 1면 사진 아래 <2030 여성·장애인·청소년·농민…“싸우는 ‘우리들’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른바 ‘남태령 대첩’에서도 드러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집회의 특성”에 주목했다. 경향은 “지난 3일 이후 매일 여의도 국회 앞과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 퇴진을 촉구하며 열린 촛불집회는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색깔로 빛났다”면서 “집회 주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더는 ‘중장년 고학력 비장애 이성애자 남성’이 아니었다. 20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농민들이 과거의 주류를 대체했다”고 전했다.
경향에 따르면 이들은 “한국 사회의 병폐가 ‘탄핵 정국’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 약자의 터전을 부수고 일상의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일은 그보다 더 뿌리 깊은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윤석열 퇴진이 전부가 아니며, “경제 불평등, 양극화, 젠더폭력, 성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 해소,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함께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광장의 외침이 정치의 변화로 이어질 것 같냐는 물음에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쏟아져나온 것은 일상의 민주주의가 침해된다고 느꼈고, 엄청난 제왕적 권력이 더 이상 용납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다음 국회와 대통령은 시민을 단순히 ‘집회 머릿수 채워주는 존재’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은 사설에서도 “남태령으로 달려간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경향은 “경찰이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은 경호처를 방패 삼아 탄핵심판 서류조차 접수를 거부하는 윤석열이 아니라, 한밤중 혹한에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선 시민들”이라며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리와 최현석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 등은 이날 사태에 사과·반성하고, 앞으로 시민들의 집회·시위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 “위축됐던 민주노총, 계엄 계기로 부활…불법시위 잦아져”
반면 조선일보는 1면 해당 사진 아래 <부활하는 불법 시위>란 제하의 기사를 싣고 트랙터 진입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민노총 등이 가세’했으며, 1박2일 시위로 “극심한 교통 혼잡”과 “충돌”, “폭행” 등이 발행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국이 윤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로 혼란한 가운데 민노총이 ‘반정부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민노총의 불법 시위가 잦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조선은 “민노총은 현 정권 들어서 2022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건설 현장 불법 폭력 행위에 대한 특별 단속 활동 등으로 세가 위축됐다”면서 “경찰 안팎에선 그간 강경 일변도 투쟁으로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던 민노총이 12·3으로 부활하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지호·김봉식 청장이 내란죄로 구속된 뒤 경찰 조직 자체가 ‘내란 동조자’로 비난받고 있어서 민노총 집회가 불법·폭력 양상을 띠더라도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경찰 관계자의 말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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