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가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뒤에는 극우 유튜버들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미국판 유튜버인 팟캐스터라는 분석이다. 미국에서는 오디오로 출발한 팟캐스터들이 동영상으로 이동하면서 지난 4분기에 유튜브가 스포티파이를 제치고 1위 팟캐스트 플랫폼에 올랐다. 스포티파이도 동영상 팟캐스트 플랫폼으로 급속히 전환 중이어서 팟캐스터와 유튜버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미디어 기술 발전은 언론 지형을 과점에서 다매체, 그리고 초 다매체로 재편해 왔다. 보도의 홍수 속에서 뉴스를 재미있게 ‘단순화’해 설명해 주는 인플루언서들의 부상은 다매체로 갈수록 짙어지는 현상이다. 특히 기존의 저널리즘(보도 양식)을 진부하다고 느끼는 시민일수록 새로운 형태의 시사 해설에 열광한다. 미국 주류 언론의 지형과 팟캐스터 부상의 역사적 경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유형의 뉴스 인플루언서 탄생
그 길은 1980년대, 러시 림보라는 문제적 인물에서 출발한다. 1년 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지역 방송국의 라디오 DJ를 전전하던 서른셋의 러시 림보는 1984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지역 라디오(KFBK)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시사 뉴스에 DJ식 진행을 접목한 특유의 애드리브는 금세 인기를 끌었다. 당시는 AM 라디오의 쇠퇴기였다. TV에 치여 무릎이 꺾이고, 음질 좋은 FM 기술의 등장으로 주저앉고 있었다. 라디오가 고음질 음악 중심 FM 방송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AM의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음질이 중요하지 않고 제작비가 적게 드는 분야. 뉴스와 토크쇼였다. 하지만 당시는 TV와 신문, 잡지의 전성기였다. 똑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비슷한 뉴스 포맷에 기대서는 가망이 없었다. 러시 림보는 다른 접근을 택했다. 작가도, 대본도 없이 애드리브로 방송을 이어갔다. 농담, 노래, 성대모사, 조롱과 야유를 버무려 뉴스를 다채롭게 믹스하는 2~3시간짜리 원맨쇼는 청취자를 사로잡았다. 타깃은 분명했다. 진보로 기울어진 주류 언론 지형[그림1]에서 소외된 유권자들, 즉 보수 유권자들이었다.
다매체 시대와 공정성 원칙의 폐기
단, 제약이 하나 있었다. 1949년에 도입된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이었다. 방송사는 희소한 공공재인 공중파를 사용하는 만큼 공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다뤄야 하며, 이때 대립하는 여러 견해를 보도해야 한다는 균형 의무다. 문제는 상반되는 의견들을 똑같이 안배하다 보면 기계적 중립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그건 재미도, 효용도 없었다. 그래서 시청률이 낮았다. 결국 38년의 시행 결과, △공적 논쟁 이슈의 보도가 오히려 줄어들고 △첫 시행 당시(1949년) 각각 95개, 2000개였던 TV와 라디오 방송국 숫자가 1300개와 1만 개 이상으로 폭증하는 등 신기술과 다매체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파의 희소성이 사라졌으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여론이 확산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5년간의 검토 끝에 이 원칙을 폐기했다. 1987년 공화당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였다.
정책 변화와 수익모델로 보수 플랫폼 성장
공정성 원칙 폐기는 3년째 작은 지역의 스타로서 불씨를 이어가던 러시 림보에게 기름을 부었다. 불을 직접 댕긴 사람은 공중파 ABC 라디오 방송국 사장 출신의 에드 맥러플린이었다. 독립 프로듀서 겸 배급사 EFM 미디어 매니지먼트를 설립한 그는 림보를 뉴욕으로 데려왔다. 공정성 원칙이 폐기된 직후, 1988년이었다. 그는 AM 라디오를 일으켜 세울 수익모델을 생각해 냈다. 바로 ‘공짜’였다. 지역 AM 라디오 방송국들에 러시 림보 쇼를 무상으로 제공할 테니 광고 시간 4분만 달라고 제안했다. EFM은 지역 라디오들의 방영 시간대에 전국 광고 판매로 수익을 내고 라디오국들은 나머지 시간에 지역 광고를 붙이면 될 일이었다. 고전하던 AM 라디오 방송국들은 환호했다. 1988년 56개로 출발한 러시 림보 쇼의 신디케이트 계약은 1년 후 150개, 2년 후에는 200개 이상으로 급증했고 1990년대 이후 65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일 3시간씩 주당 5일간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1500만~2000만명의 청취자들이 라디오 앞에 집결했다. 곧이어 미국 전역에 모방 프로그램이 양산됐다. 루퍼트 머독은 이 라디오 현상을 케이블 TV로 가져온다. 1996년 24시간 뉴스 채널 폭스 뉴스를 설립한 것이다. 이를 보수진영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구현한 사람은 초대 CEO인 로저 에일스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러시 림보 쇼를 TV판으로 제작했던 인물이었다.
진보의 주류 언론과 보수의 뉴미디어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그 유산은 팟캐스트로 옮겨왔다. 미국의 조사분석업체 에디슨 리서치에 따르면 대선 직전 달인 10월에 미국인의 절반 정도(47%)가 1번 이상 팟캐스트를 들었다. 젊은 층은 더 많았다. 12세~34세 미국인은 10명 중 6명꼴이었다. 팟캐스트 청취자의 구성도 변했다. 지난 5년간 고졸 이하 학력자의 비중은 12%포인트 상승했다. 히스패닉 비중은 9% 포인트, 흑인은 4% 포인트 늘었다. 젊은 층, 저학력자, 비백인들은 팽팽한 보수와 진보 진영의 대결에서 시계추를 트럼프 쪽으로 기울여 완승으로 이끈 주역이다. 투표 성향이 낮은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끈 게 팟캐스트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퓨 리서치 센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보수 성향의 미국인 중 절반 가까이(46%)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이런 오디오 뉴스를 더 신뢰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뢰는 19%에 그쳤다[그림2]. 주류 언론 신뢰도와 정반대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절반 이상(54%)은 TV, 라디오, 신문 등 매스미디어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신뢰는 12%에 불과하다[그림3]. 레거시 미디어는 민주당, 팟캐스트는 공화당의 언론으로 양분되는 분위기다. 문제는 뉴스 회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뉴스 저관여층들이 팟캐스트에 매료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주류 언론 우회에 성공한 이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공화당)의 재선(1956년) 이후 68년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 온 진보성향의 신문 뉴욕타임스 구독자는 1100만명으로 세계 1등이다. 보수 성향의 미국 1위 팟캐스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의 팔로워 수는 유튜브 1860만명, 스포티파이 1500만명을 넘는다. 팟캐스터 한 명이 뉴욕타임스만큼의 양적 파워를 갖는 현실이다. 선거 2주 전인 10월26일, 3시간에 걸친 조 로건 팟캐스트의 트럼프 인터뷰는 1주일 만에 유튜브에서만도 4500만건(30초 이상 시청 기준), 스포티파이와 애플 등 다른 플랫폼에서 2500만건 이상의 뷰를 기록했다. 테오 본, 앤드류 슐츠 등 트럼프가 출연한 다른 팟캐스트 조회수도 유튜브에서만 각각 1500만회, 800만회에 달했다. 카멀라 해리스도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젊은 흑인 남성 타깃의 ‘클럽 쉐이쉐이’와 ‘올 더 스모크’, 여성 타깃의 ‘콜 허 대디’ 등에 나갔다. 이들 유튜브 조회수는 선거가 다 끝난 11월 말 기준으로도 각각 약 160만회, 약 60만회, 약 80만회다. 트럼프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상위권 팟캐스트를 보수권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주류 언론들은 압도적으로 해리스를 지지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우회하는데 깔끔하게 성공했다. 언론의 게이트키핑 모델은 무력화됐다.
팟캐스트에는 저널리즘 기준이 없다. 확인되지 않은 ‘설’들이 난무하는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UFC부터 고래, 마약과 알코올 중독의 경험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3시간에 걸쳐 주관적인 잡담을 이어간다. 거기에 트럼프의 소득세 정책, 언론에 대한 불만 같은 이슈를 끼워 넣는다. 트럼프 측은 이런 방식이 트럼프에게 ‘인간적 진정성과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데 주효했다고 판단한다. 정치와 정책 얘기로만 빼곡히 채워 한 이슈당 짧게 끊어가는 시간제한형 주류 언론의 토론과는 판이하다. 이런 방식은 정치에 심드렁하고 투표 성향이 낮은 29세 이하의 남성들, 저학력 청취자들에게 정치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냈다. 잡담과 유머 속에 정치 얘기가 섞이고 화자에 대한 호감이 높아지면 설득 효과는 배가된다. 살기도 퍽퍽한데 과잉 PC(정치적 옳음)와 ‘깨시민’ 운운에 신물 난 이들에게 먹혔다는 얘기다.
지속가능한 언론 제도에 기자들의 역할은 더욱더 중요
물론 한미 대통령의 유튜버 사용법은 판이했다. 한국 대통령은 스스로가 정치 초보자로서 극우 유튜브에 빠지는 믿기 힘든 상황을 연출했다. 미국 대통령은 정치 초보자들의 심리와 변화된 미디어 지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어려웠던 선거를 완승으로 이끌었다. 초 다매체 시대의 언론 생존법은 ‘차별화’로 이동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언론들이 백가쟁명 하면서 전체적 균형을 달성하는 새로운 언론 지형은 뉴노멀이 됐다. 여러 저널리즘, 즉 보도 양식 자체가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미국 주류 언론들도 트럼프 승리가 돌발 현상이 아닌 유권자 지형의 재편 신호임을 인정하고 보도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최고급 정보를 손에 다 쥐고도 저급한 유튜버의 음모론을 탐닉하는 정치 초보 대통령을 목도하는 상상 못 할 현실의 한국에서는 더 시급한 문제일지 모른다. 그래서 팩트에 기반하되 어떻게든 재미 요소를 가미하려는 언론사들의 유튜브 노력을 더욱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저널리즘은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어떤 저널리즘이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느냐는 시대를 초월해 국가 존망에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는 2024년의 끝이다. 디지털을 넘어 인공지능(AI) 시대에도 기자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니, 더욱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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