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케이팝 부르며 응원봉 흔드는 게 낯선가?

[언론 다시보기]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여성들 많으니 집회 나오라.” 팟캐스트 <매불쇼>에 출연한 박구용 전남대 교수가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2030 남성들에게 준다’던 정보였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의 조속한 퇴진을 촉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한순간 남성들의 눈요깃거리로 전락한 장면이었다. 여성은 한 명의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더라도 이렇게 때때로 누군가의 성적 쾌락을 위한 물건으로 소환된다. 광장은 누구에게나 늘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처럼 그 안에서 누군가는 배제돼 왔다. 이런 사실을 여성들은 너무나도 잘 알지만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더 많이 모였고 더 많이 이야기해 왔다. 그 결과가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였다.


7일 국회 앞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로제가 브루노 마스와 부른 곡 ‘아파트’가 울려 퍼졌다. 2030 세대 여성들은 윤석열 탄핵이라는 염원을 담아 응원봉을 흔들며 “아파트”를 “탄핵해”로 개사해 불렀다. 이들을 언론은 신기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여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우린 늘 여기에 있었는데….’


거짓이 아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해 한미FTA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던 때 청계천에서 촛불을 켠 이들은 당시 ‘촛불소녀’로 불리던 여성들이다. 집회가 점점 확산하자 ‘유모차부대’가 광장으로 나왔다.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미래라이프 단과대 설립에 반대해 경찰과 대립하던 상황에서 스크럼을 짜고 불렀던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도 마찬가지였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의 말에 LED 촛불이 등장했다. 그때 케이팝 팬들이 자발적으로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고 김수정 기자(노컷뉴스)는 기록했다. SPC 본사와 을지로 OB베어 앞까지(복길 자유기고가). 그 어디 여성들이 없던 시위가 있었던가.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진 때를 기억한다. 사건 직후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의 문제로 인지한 여성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은 ‘묻지마 살인’에 힘을 실었다. 수사기관도 피해자의 정신질환을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해 논란을 샀다. 한국 사회가 여성을 향한 폭력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실에 여성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여성들로 하여금 더 많이 광장으로 나오게 했다. 2018년 혜화역 시위는 그렇게 연결된다. 그렇게 여성들은 늘 광장에 있었다. 때로는 응원봉을 들고 케이팝을 부르며.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은 ‘불법 촬영’ 사건에 대한 차별적인 수사 문제를 제기하며 목소리를 냈다. 수만 명의 여성이 모인 대규모 집회가 개최됐으나, 언론의 관심은 ‘과격 시위’에 맞춰졌다. 또 기억에 남는 보도는 팩트체크 기사였다. “일베 검거율이 더 높다”는 경찰의 주장을 언론이 그대로 받았었다. 그런데 비율이 무슨 소용인가. 건수부터 차이가 큰데. 언론은 통계가 감추는 진실을 짐짓 모르는 척 ‘혜화역 여성들이 틀렸다’는 말들을 보탰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뭣이 중한가.


국회 앞 윤석열 탄핵 집회 참가자들은 2030 세대 여성들이 시위를 주도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통계적으로도 사실이었다. 경향신문에 의하면 집회 참가자의 성별·연령대별로 분석했을 때 20대 여성 비율이 18.9%(7일 기준)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런데 ‘집회’를 다룬 언론은 어땠나. ‘‘비상계엄’을 주제로 발 빠르게 제작해 호평받은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집회 참가자의 인터뷰이 다수는 ‘남성’이었다. 한 아침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는 “이번에 큰 희망을 본 게 젊은 여성들의 힘”이라는 출연자의 말을 “젊은이들”이라고 정리하며 의도적으로 ‘여성’을 지워버렸다. 비상계엄 이후, 공당의 대표들이 마이크를 쥐었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누가 당을 대표해 발언하고 있나. 적어도 허은아 대표는 아니다.


언론은 이렇게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를 지운다. 여전히 ‘정치’ 영역에 여성은 들어가선 안 되는 공간인가. 아니면 여성의 옳은 소리가 두려운가. 광장에 선 여성들이 묻고 있다. “우리가 선 곳에 없었던 건 언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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