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호외 제발 팔아주세요"… 윤전기 다시 돌린 한겨레
'민주 수호 에디션' 인터넷서 1만부 판매
2030·여성 중심 구매… 일일 후원도 8배 증가
"열성팬 문화, 구독과 후원으로 이어질 수도"
“가까스로 구매할 수 있어서 함박웃음 지으면서 결제하려는데 바로 품절 됐습니다. 저도 민주주의 수호하게 해주십시오. 제발요.”
“집회 다녀왔더니 품절이래요. 효녀가 될 마지막 기회도 놓쳤다고요. 지금 1시간째 새로고침 중인데 손이 느려서 결제 5번 튕겼어요.”
포털 네이버에 입점한 ‘한겨레 브랜드 스토어’에 종이신문을 팔아 달라는 문의가 500건 넘게 쇄도했다. 구매에 성공하는 꿈을 꿨다거나, 한 달을 기다려도 좋으니 예약 판매를 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한겨레가 10일 ‘민주주의 수호 에디션’ 1만여 묶음을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령 선포 이튿날인 4일 새벽 발행된 호외와 탄핵 투표가 이뤄진 7일 국회 앞에서 배부한 특별판,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을 1면에 넣은 9일자 신문을 묶은 상품이다.
날짜가 지난 신문을 다시 인쇄하고, 심지어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한겨레는 구매자들의 수요를 알아봤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의 얼굴이 들어간 9일 신문이 입소문 났다. 시민들은 이날 신문을 구하려 가판대와 편의점을 돌기도 했다.
한겨레는 지국마다 배달을 끝내고 남은 신문 300부를 긁어모았다. 이튿날인 10일 오전 엑스(X, 옛 트위터)에 공지를 올려 온라인 판매를 해보기로 했다. 반응은 놀라웠다. 게시글을 올린 지 5분 만에 판매가 종료됐다.
오후 6시에는 아예 윤전기를 다시 돌리기로 했다. 이왕 하는 김에 3일 치 신문을 한 상품으로 묶어 다시 만들기로 했다. 내란 사태와 관련 없는 기사는 빼 분량을 줄였다. 배송비를 제외한 한 묶음 가격은 3000원. 이때까지만 해도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 가늠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판매 시작 1시간 만에 완판됐다. 오후 8시 급히 3차 판매를 시작해 역시 1시간 만에 모두 판매했다. 그렇게 하루 사이 주문 수량 1만건을 훌쩍 넘겼다. 여전히 추가 판매 요청이 많았지만 당일 신문도 인쇄해야 해 더 준비하기는 어려웠다.
이번 ‘민주주의 수호 에디션’이 호응받은 이유는 2030 세대와 관련이 깊다. 황예랑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은 “구매자의 상당수가 2030 세대였다”며 “종이신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들이 종이신문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의 일일 신규 후원회원도 이전보다 8배 정도 급증했다. 이들의 60% 이상이 2030 세대다.
이번 계엄 사태에 2030 세대의 높은 관여도도 배경이 됐다. 특히 여성의 참여도가 높았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생활인구 데이터’를 보면 촛불집회가 있던 7일 국회가 있는 여의도동의 인구는 오후 5시 37만여명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이 가운데 2030 여성이 10만명을 넘어 27.8%를 차지했다.
한겨레의 이번 기획도 젊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엑스를 통해 홍보됐고,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판매 소식이 퍼지면서 구매자가 몰리기도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구독자가 56만명인 한겨레 엑스 계정에 올라온 게시글을 인용하거나 공감을 표시한 이용자의 88%가 여성이었다.
새로운 세대가 종이신문에 관심을 두고 소비를 이어갈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서수민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금은 ‘계엄이 역사 속에서 뛰쳐나왔다’고 할 정도인데 이를 기억하고 싶어 종이 매체를 소장하려는 것 같다”며 “장기적으로는 2030이 지면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지지하기 위해 구독과 후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열성팬 문화는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팬들을 현실에 참여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국회 앞에서 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야 어렵지 않지만 기존 언론에는 전국의 정보를 촘촘하게 취재하는 힘이 있다”며 “최근 한겨레에 전통적인 진보 독자층이 많이 빠져나가기도 했는데 새로운 세대가 전통 언론의 힘을 이해하면 균형 잡힌 언론 소비를 할 수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한겨레는 14일 국회에서 있을 2차 윤 대통령 탄핵안 투표 때도 특별판을 만들어 집회 현장에서 무료로 배부할 계획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면 다시 호외를 내고, 그때까지 나온 호외와 특별판, 105인의 얼굴이 1면에 실린 신문 등 다섯 부를 한 묶음으로 다시 판매할 계획이다. 구매자들에게는 구독과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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