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45년만에 계엄이 선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입처로, 회사로 내달렸다. 그렇게 국회, 대통령실, 국방부 등지에서 계엄선포 이후 혼돈의 상황이 독자·시청자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계엄이 선포된 3일 밤부터 계엄이 해제된 다음 날 새벽까지 기자들은 무엇을 보았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돌아갔던 취재 현장, 뉴스룸의 계엄 그날 밤을 재구성했다.
◇3일 오후 10시2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조성봉 뉴시스 사진기자, 공병선 아시아경제 기자는 계엄선포 직후 비교적 초반부터 국회로 들어갈 수 있었다. 10시20분쯤 국회 인근에서 ‘꾸미’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공병선 기자는 동료들과 스마트폰으로 대통령 긴급담화 생중계를 지켜봤다.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의 말이 나오는 순간, 저녁 자리를 파했다. 집으로 가려다 공 기자는 국회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황이 되면 가보라’는 말을 듣고선 곧장 국회로 발걸음을 돌렸다. “국회 출입 기자니까, 관성대로 국회를 간 것도 있다.” 이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조성봉 기자는 ‘성봉아 계엄이다’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들을 척결해야 되고…’ 발언을 하는 순간, “머리도 감지 않고, 여하튼 바로 총알택시를 탔다.” 18분 만에 국회에 도착했다. 오후 10시45분~50분 두 기자가 경찰 기동대에 의해 가로막힌 국회 정문 앞에 도착한 시각이다.
◇3일 오후 9시20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그에 앞서 이날 오후 9시20분쯤부터 대통령실 기자들 사이에선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설이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내용으로 왜 발표를 하는지는 대통령실 참모들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후 9시50분경 방송사들에 담화 내용을 알리지도 않은 채 생중계 연결을 바란다는 메시지만 공유됐다.
윤 대통령이 긴급담화를 진행하는 순간까지도 대통령실에선 출입기자들에게 아무런 예고가 없었다. 당시 대통령실에 있었던 김태영 JTBC 기자는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전날 밤 상황에 대해 “혼돈 그 자체”였다고 전했다. 당시 김 기자는 핵심 참모 중 한 명과 식사 중이었는데 이 참모 역시 그제야 서둘러 대통령실로 돌아갈 정도였다. 김 기자는 “저를 비롯한 상당수 기자들이 대통령실로 하나둘 복귀했고, 얼마 안 돼 경호처에서 출입을 막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10시23분, 결국 담화가 시작됐고 기자들도 방송을 보고서야 내용을 알게 됐다.
◇“용산 출입기자가 뭔가 이상하다 한다”… 계엄 전후 비상 걸린 언론사 뉴스룸
비상계엄 선포 직후 각 언론사 편집국, 보도국 분위기도 급박하게 흘러갔다. 박범수 MBC 보도국장은 집으로 돌아온 직후인 오후 10시40분쯤 야근 당직자로부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조건 밤샘 특보 준비, 부국장·부서장·팀장 전원 복귀” 지시를 내린 박 국장은 곧장 회사로 들어갔다. “MBC가 제1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언론사 봉쇄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전에 일단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박 국장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은 사건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내란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을 제시해선 절대 안 된다고, 불법적인 내란 행위라는 규정하에 특보나 뉴스를 내보내게 했다”고 말했다.
지면 강판 연기, 호외 제작으로 신문사 편집국도 밤을 지새웠다. 조남규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오후 9시50분쯤 정치부장을 통해 ‘용산 출입기자가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방송사에 생중계 요청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정치부 기자들 전부 현장 복귀를 지시했고, 조 국장 본인도 담화 내용을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조 국장은 “비상계엄이라는 뜬금없는 발표가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정신이 없었다”며 “저희 같은 경우 5판(초판) 마감이 당초 10시30분까지다. 윤전기를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5판 마감을 뒤로 미뤄 최종적으로 다음 날 오전 1시에 강판을 했다”고 말했다.
◇계엄군 본회의장 앞까지 진입, 군 국방부 기자단 퇴출… 위험한 상황 계속된 취재현장
다시 여의도. 시민들과 함께 몸싸움해가며, 경찰에게 따져가며 겨우 국회 정문을 통과한 조성봉, 공병선 기자는 곧바로 헬기 소리를 들었다. 오후 11시께, 두 기자는 국회 본청 뒤 운동장에 착륙한 헬기에서 공수부대가 내리는 모습을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군이 진입하기 전 국회 직원, 보좌진들이 국회 본청에 있는 의자나 책상을 뜯어서 문을 막는 모습, 계엄군과 보좌진의 격렬한 몸싸움도 눈앞에서 봤다. 정말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기자는 “헬기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운동장으로 뛰어가려다 공수부대가 본회의장을 점거할 거 같아 일단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 대표실 쪽에 있다가 예결위장으로 몸을 피신하려고 허겁지겁 가는 모습을 봤다”며 “계엄군을 처음 보니 어떤 두려움을 순간 느끼긴 했는데 저희 팀원 중엔 제가 처음 온 상황이라 일단은 찍어야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국방부 기자실에서도 위험한 상황이 일어났다. 권혁철 한겨레 기자가 6일 기사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3일 밤 11시20분께 전투복 차림의 군사경찰이 갑자기 기자실에 들어와 ‘국방부 청사 내부에 있는 민간인들은 모두 나가야 하니 기자들도 나가라’고 말했다. ‘안 나가면 테이저건(전기 충격용 권총)을 쏠 수도 있다’고 경고도 했다. 권 기자는 “이러다 테이저건에 맞거나 포승줄에 묶여 끌려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밤 11시50분쯤 장교 한 명이 ‘기자실까지는 민간인 출입을 허용한다’고 말을 바꾸며 위험한 상황은 일단락됐다.
4일 0시30분에서 1시 사이.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 직전 국회 본회의장 안에 있던 공 기자는 문밖에서 거칠게 대치하는 소리,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으며 ‘아 결국 군이 들어오는 건가’라는 어떤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결국 이날 새벽 1시1분, 계엄선포 직후 150분여 만에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통과됐다. 공 기자는 “이날 다들 몸 안 사리고 기자들은 기자 역할을 했고, 보좌진, 국회의원들도 그 역할을 다 했다”며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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