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 해, 상상도. 그때 경험한 사람 외에는 누가 상상을 하겠어.”
제29대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노향기 고문은 44년 전 계엄 당시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상상도 못 해”란 말만 반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비상계엄 상황이 이어지던 1980년 5월, 그는 10년차 한국일보 기자로서 기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기자협회는 5월16일 연석회의를 열고 5월20일 0시부터 전국 신문·방송·통신 기자들이 검열거부 및 제작거부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하루 뒤,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비상이 걸렸다. “그때가 토요일 저녁이었거든. 나는 그날 야근이어서 18일 0시부터 계엄이 확대되는 걸 알고는 처음엔 도망을 갔지.”
하지만 도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42일 만에 자수했고,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기자협회 집행부 대부분이 구속되면서 기자협회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고, 그해 7월31일 기자협회보는 폐간됐다. 협회보는 계엄이 해제되고도 3개월이 지난 81년 4월에야 복간됐다.
노 고문에게 계엄령 치하의 언론검열과 통제가 어떤 것인지도 물었다. 그는 “정하면 정하는 거야. 무조건이야”라며 또다시 “상상도 못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민이 얼마나 각성이 돼 있는데, (다시 그런 일은) 저질러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계엄령 발동은 상상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사전 모의를 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국군 방첩사령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를 공개했는데, 이 문건엔 80년 5월17일 당시 내려진 ‘계엄포고령 10호 전문’이 포함됐다.
80년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는 2017년 3월 촛불집회 당시 기무사가 세운 계엄 대비계획에도 ‘영감’을 준 바 있다. 해당 문건에서 기무사는 ‘보도매체 및 SNS 통제 방안’을 세워 계엄사 보도검열단이 사전검열을 시행하고, 위반시 1차는 경고, 2차는 현장취재 금지, 3차는 3년 이하 징역 등 형사처벌한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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