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이것이 현실이 될 뻔했던 3일 밤을 떠올리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하다. 2024년 대명천지에 계엄이 가능하리라 누군들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그것도 ‘반국가세력 척결’을 빌미로 한 계엄이 말이다. 그날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험적 만행을 똑똑히 목격했다. 무도한 권력의 계획이 성사됐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언론 통제’와 ‘가짜뉴스 금지’를 명령했고, 이를 위반한 자를 ‘처단한다’고 했다. 많은 기자들이 그 순간 군홧발이 멋대로 누비는 편집국·보도국을 머릿속에 그렸을 것이다. 다행히도 국회에 발 빠르게 모인 야당과 시민이 힘을 합쳐 계엄령을 선포 155분 만에 무너뜨렸다. 그날 세계는 우리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찬사를 보냈다.
우리는 이 초유의 사태 속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동료의식을 보인 기자들에게 주목한다. 포고령에 담긴 온갖 난폭한 언어에도 기자들은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12·3 비상계엄은 1979년 10·26 이후 45년 만의 계엄이었다. 현재 국회 등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대부분 그 이후에 태어나 계엄을 생애 처음 겪는 세대에 속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더 집요하게 파헤치도록, 어떤 진실이든 두려움 없이 다가가도록 훈련받은 기자들 앞에 이런 태생적 조건은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늦은 밤 마치 본능에 이끌린 듯 현장으로 규율 있게 복귀한 후배들을 보며 많은 선배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계엄군이 ‘국회 완전 봉쇄’란 임무를 띠고 국회로 향하던 그 시각에도 많은 기자들이 경찰 통제선을 피해 국회 담장을 넘었다.
그날 계엄군은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유린하려고 했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을 막기 위해 국회 본회의를 해산시키고,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를 체포하려 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자칫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기자들은 현장취재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회를 휘젓는 계엄군의 행적을 빠짐없이 기록하려다 충돌해 바닥에 나동그라졌으며, 계엄군의 퇴거 요구를 거부하다 사지가 통째로 들려 나가기도 했다. 폭주하는 권력을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그날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들의 근성 때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날만큼은 언론을 피상적으로 갈라온 진보·보수란 잣대가 무색했을 정도다. 중무장한 계엄군 앞에 타사 기자는 든든한 동료였으며, 위헌·위법적인 계엄령을 한목소리로 규탄하는 동지였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던 그 날, 기자들은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비상식적 계엄은 무위에 그쳤지만 언론이 할 일은 여전히 산적하다. 그날의 폭거는 본분을 망각한 자들이 군림하는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위헌적인 계엄령 선포 전 국무회의 참석 여부마저 얼버무리는 관료들, 부당함을 감지하면서도 명령이어서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군인들, 헌법을 어겨가며 동료 정치인을 체포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죄하는 절차에 참여조차 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들의 변명과 침묵 앞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의 감시와 견제 역할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계엄의 문턱에서 언론자유를 지켜낸 그 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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