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왔다’고 하자 시민들이 보인 그 차가운 표정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현장에서 시민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KBS라서 안 한다. 나는 MBC하고만 인터뷰하겠다’고 하더라.”
최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 현장에 갔던 KBS A 기자가 겪은 일화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사의 뉴스를 두고 KBS 기자들의 자괴감, 분노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들은 KBS 보도에 대해 “이대로 가다간 KBS가 내란의 공범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취재, 제작, 편집, 뉴스의 만듦새 등 모든 것이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일 KBS 기자들은 KBS 4층 보도국 회의실 앞에서 최재현 당시 보도국장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4일~7일 KBS 기자협회는 연달아 3건의 성명을 발표했다. 자사의 ‘비상계엄 특보’ 시청률과 ‘뉴스9’ 보도에 대해 “도대체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느냐” 우려하며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정국’ 관련 특별취재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요구한 게 주요 내용이다. 기자들은 KBS가 계엄 자체에 대해 책임을 준엄하게 묻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야 했으나 그런 내용의 리포트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 현장에서 기자들이 발제한 아이템을 메인 뉴스에 배치하지 않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KBS 기자협회는 5일부터 특별취재팀 구성을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보도본부는 이를 거부했다.
KBS 기자협회는 성명에서 “사무실에 앉아 뉴스를 망치는 사람 따로 있고, 현장에서 온몸으로 비난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하느냐”, “기자들의 자존감은 그 어느 때보다 바닥을 향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기자들이 느끼는 자괴감을 토로해왔다.
B 기자는 “계엄 바로 다음날 톱부터 2번째, 3번째 보도 내용 모두 탄핵 얘기였다. 45년 만에 계엄인데, 계엄 얘기는 뒤로 빼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뉴스 편집을 하는 간부들에 대해 불만이 많다”며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상황인데, 위에서 안 받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 기자도 “하루아침에 보도국장 사퇴 요구가 나온 게 아니라, 그간 뉴스 편집의 가치와 방향성이 현장 취재 기자들이 느끼는 것과 너무도 달랐던 상황이 이어지다 계엄 사태에서 폭발한 것”이라며 “처음엔 어느 정도 설득하면 넣어줄 것처럼 하다가도 당일이 되면 갑자기 여러 이유를 들면서 9시는 못 들어간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밀리는 이유가 뉴스 가치가 크게 없는 북한 뉴스 때문인 게 많았다”고 지적했다.
보도본부는 ‘계엄령 부실보도’ 관련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임시공방위 개최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비상계엄 관련 충실히 취재 및 보도에 임하고 있으며, 뉴스 공정성 위반 사항이 아니므로 공방위 안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보도본부가 밝힌 거부 사유다.
C 기자는 “보도 내용 자체, 기자가 쓴 기사를 이상하게 데스킹 한다는 것도 문제인데, 애초에 들어가야 할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 왜 우리 뉴스엔 이 보도가 없느냐로 싸우는 게 더 힘든 상황”이라며 “진영의 유불리를 따져가면서 수뇌부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지지하는 정치 집단의 이름을 앞세우는 게 가장 크게 비판받아야 될 지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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