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대학교의 공학 전환 반대, 학내 성폭력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장기화할 조짐인 이번 여대 사태는 ‘여성 전용공간’을 수호하려는 20대 여성들이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를 상대로 대결 구도를 이루며 거의 일방적인 지탄을 받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들 여성의 강경한 입장은 사회 전반 및 언론·정치권의 시선과 선명하게 대립한다.
전자의 여성들에게 여대란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안전이 그나마 확보되는 곳이자,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식되는 환경에서 자유와 성장을 도모하는 해방의 공간이다. 불법촬영과 교제폭력은 물론 일상 곳곳에 잔재한 남성 사회의 여성 차별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온전한 자신의 가능성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공학 결정은 그런 세계의 본질을 완전히 흔들어 이들을 다시 남성 사회의 일원으로 돌려놓는 움직임으로, 당사자들에겐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동덕여대의 경우 학부생 일부가 남학생으로 뒤늦게 확인된 점, 최근 여러 학사제도 개편 과정 및 교내 학생 사망 사고에서 비민주적 소통이 반복됐다는 학생들의 불만 등이 쌓인 역사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2024년의 한국 사회는 이런 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볼 의지가 없어 보인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아진 시대에 금남(禁男)의 캠퍼스를 저토록 사수하려는 여성들의 절박함은 도무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인정될 기미가 없다. 공학대학 여학생들이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대 지지 글을 쏟아내면 “순수 학우의 의견일 리 없다”며 불순한 단체의 개입부터 의심한다. 요컨대 한국의 여대를 둘러싼 이 믿을 수 없는 사태를 사회가 납득할 유일한 길은 그 원인이 된 절박함 또는 이를 외치는 주체가 너무 이상하다는 설명뿐이다.
그 결과 이 사태는 ‘교내 공간을 점거하고 래커 시위를 할 정도는 아닌’ 사안에 일부 극성 여성주의자들이 과격한 시위를 선동하며 일으킨 비문명적 폭동에 불과한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동덕여대 측은 공학 전환 논의 잠정 중단에도 학생들이 교내 점거 및 시위를 끝내지 않자 일부를 특정해 소송을 거는 강수를 두며 학생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투쟁 역사를 기억하는 사회가 지금의 여대 시위를 폭력적이라 하는 것에서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고 외면하려는 의도를 배제하기는 힘들다. 투쟁 중인 상황에도 집회와 파업권 대신 기물 파손이라는 자본주의적 논리를 앞세운 폭력 운운에 불균형적으로 방점이 찍힌 여론과 언론의 흐름이야말로 의미심장하다. 언제는 ‘외부 세력’이 개입했다더니 이제는 ‘시위 아마추어’인 학생들이 잘 지워지는 수성 대신 유성 래커를 써서 수십억 원의 배상액을 떠안게 됐다며 조소를 보내는 칼럼이 주요 일간지 지면에 버젓이 실린다.
여대의 폭력 시위 및 학습권 침해 논란은 이런 큰 그림을 강화할 근거로써 동원된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최근 수년간 시위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기도 했다. ‘남성을 거부하고 여성들끼리 있겠다’고 외치는 20대 여성들의 시위라니 더 볼 것도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여성들로서는 화염병도 주먹질도 없는 ‘래커 시위’에 이렇게나 타격감을 느끼는 사회가 불가사의할지 모른다. 그 정동(情動)의 핵심은 지워지지 않는 래커로 쓰인 ‘소멸할지언정 (남성에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 자체는 아니었을지 돌아보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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