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식 SBS 보도본부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투표가 부결됐다. 낙마한 후보자가 현직 보도국장이란 점에서 충격은 더 크다. 뉴스 경쟁력 하락은 물론 소통 부족, 지주회사에 종속된 의사결정 구조 등 전반적으로 누적된 ‘조용한 분노’가 표심으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SBS가 26~28일 보도본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대식 본부장 후보자 임명동의 투표는 재적인원 과반의 반대로 부결됐다. SBS 보도본부장 임명동의가 부결된 건 2019년 정승민 후보자에 이어 두 번째이며, 현직 보도국장으로서 보도본부장에 지명을 받고도 구성원들의 반대로 낙마한 첫 사례다.
부결 어려운 요건인데 적극적으로 반대표 행사
SBS 보도본부장 임명동의 요건은 ‘재적인원 기준 보도 50% 미만 반대시’로 부결이 어려운 구조다. 반대표가 투표인원이 아닌 재적인원의 50% 이상이어야 부결되므로 일단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 반대 의사를 가진 사람이 투표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투표율이 81.6%로 전임 본부장 때보다 높았던 것은 적극적인 반대표 행사가 많았다는 뜻이다. 다만 득표율 및 반대표 수 등은 노사합의로 공개되지 않는다.
정승민 후보자 때는 과거 보도국장 재임 당시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오보로 감봉 6개월의 징계를 받은 전력 등 비교적 명확한 결함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최대식 후보자는 결격 사유가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문제가 있다면 ‘현직 보도국장’이란 점이었다. 따라서 이번 임명동의 부결은 최대식 후보자 개인에 대한 것을 넘어 보도본부, 나아가 SBS 인사와 경영을 책임지는 리더십 전반에 대한 구성원들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뉴스 경쟁력 하락에 자괴감·패배감…“이대론 안 된다”
취재에 의하면 이번 부결 사태는 원인을 몇 가지로 특정하기 힘들 만큼 복합적인 배경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우선은 ‘보도국장으로서의 역량 부족’이 평가받은 거란 분석이 하나다. “전반적으로 보도 관련 실적이 무너지고 자존심도, 저널리즘도 살아나지 못한다는 패배감이 ‘리더십 이대로 안 된다’는 뜻으로 모아졌다”는 것이다.
최대식 보도국장 재임 1년 3개월여 동안 SBS의 저널리즘은 물론 뉴스 경쟁력, 평판 등이 모두 하락했다는 지적엔 이견이 없어 보였다. 직전 정치부장 시기까지 합해 최근 2년간 가장 중요한 역할들을 맡아 왔으나, 그 기간 SBS 뉴스의 경쟁력은 크게 기울었다는 지적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나 굵직하고 민감한 이슈에 관한 보도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대통령 부부 관련, ‘채 상병’ 이슈 등 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주도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크다. 이처럼 ‘보도가 잘 되고 있느냐’는 물음표는 최 국장 재임 내내 따라붙었고, 분노와 불만은 소리 없이 쌓여갔다. 최근엔 중간연차 이하 기자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국장을 비롯한 보도국 수뇌부에 질의서 형태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차 미만인 A 기자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부에서나 밖에서 보기에도 비판(보도) 이런 수위가 낮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고, 이게 보도국장 개인의 책임이 아닌 걸 인지하고 있지만, 재임 기간 보여준 변화랄까 그런 게 구성원들에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시청률이 떨어지고, ‘디지털 아성’이 무너졌다. “가장 핫(hot)한 이슈를 다루지 않으니 디지털에서도 조회수가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자협회보 최근 보도에 의하면 9월 이후만 보더라도 SBS 뉴스 유튜브 채널 월간 조회수는 계속 하락세로 10월 3주 기준 MBC의 절반 수준이며, YTN에 3위 자리마저 내줬다.
이런 문제가 비롯된 가장 큰 원인으로 B 기자는 “소통이 안 된 것”을 꼽았다. “1년 동안 보도국 구성원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적체되면서 오해도 많이 생겼는데,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 목덜미만 끌고 간 게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젊은 기자들이 문제제기에 나선 것도 그때그때 소통하며 해결하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그는 “다른 회사처럼 파업이나 피케팅을 하는 등 항의하는 게 외부에 알려질 만큼은 없었지만, 내부의 아쉬움이 많이 쌓이면서 이번 기회에 표출된 것 같다”면서 이를 ‘조용한 분노’로 설명했다.
SBS의 비전과 미래를 ‘여의도’에서 결정한다?
근본적으로는 SBS의 경쟁력과 미래가 걸린 의사결정을 지주회사의 ‘올드보이’들이 주도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반감이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인사권자는 SBS 사장이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여의도’(TY홀딩스 소재지)에서 이뤄진다는 공공연한 소문이 있고, 바로 이게 문제의 핵심이란 것이다.
C 기자는 “옛 ‘올드맨’들이 복귀해서 60대 할아버지들이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최종적인 확정은 90대 할아버지가 하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설명하며 “SBS가 콘텐츠 회사로서 경쟁력을 담보하려면 발탁 인사도 하고 외부 인재도 끌어오고 해야 하는데 이런 엄혹한 시기에 의사결정 구조가 노후화되고 있고, ‘고인 물’들이 회전문처럼 돌아가는 사안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SBS 설립자인 90대의 윤세영 창업회장은 태영건설 위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SBS 지주회사인 TY홀딩스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13일 SBS 창사 34주년 기념식에는 윤석민 TY홀딩스 회장이 오랜만에 참석하며 사위인 TY홀딩스 경영관리실장과 홀딩스 임원들을 대거 대동해 그 배경을 두고 여러 말을 낳기도 했다.
대주주 입김이 더 세지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조정 현 보도본부장을 비롯해 최대식 국장과 정치부장까지 과거 윤세영 창업회장 비서실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최근 몇 년간 보도본부 요직에 연속 기용되고 있다는 점도 의심을 키운 부분이다.
취재 결과 세대별로, 속한 부서나 맡은 업무에 따라 견해차는 있었지만 ‘이대로 안 된다’는 위기의식만큼은 명확해 보였다. SBS 경영진과 대주주는 이번 부결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다음 카드를 꺼내 들까. 회사는 7일 이내에 새 후보자를 공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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