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왕이 될 수도 있다.” 50년 동안 백악관 출입기자를 하며 날카로운 질문으로 대통령들을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한 헬렌 토머스 전 UPI 통신 기자가 했던 말이다. 그는 “권력자에겐 거친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언론의 본분이 권력 감시에 있고, 그 기능이 ‘송곳 질문’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최근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명확히 해달라’는 기자 질문을 두고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고 한 발언이 비판받고 있다. 대통령이 “어찌됐든 사과”한다며 두루뭉술 넘어가려는데 구체화해서 사과하라고 하니 당황했을 법하다. 애초 ‘끝장 회견’을 한다며 호기롭게 나선 건 대통령실이었다. 시시비비까지는 아니더라도 김건희 여사 의혹, 명태균 폭로 ‘총선 공천개입’ 녹음 등 온갖 의문에 성실히 답할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했다. 125분간 진행된 대통령 회견은 기대와 달리 어느 하나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은 ‘맹탕 회견’이었고, 기자의 ‘사이다 질문’은 국민들의 답답함을 대변한 것이었다. 이를 두고 ‘무례’하다며 공격한 것은 결국 국민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다.
회견을 돌아보면 정무수석의 ‘무례’ 발언이 겨눌 대상은 다른 곳에 있다. 윤 대통령은 회견 중 공사 구분 없이 “앞으로 부부싸움을 좀 많이 해야 될 것 같다”며 농담하고, 사회를 보는 대변인에게 “질문 하나 정도만 하자”며 반말하고, 외신 기자 질문엔 “말귀를 잘 못 알아듣겠는데”라고 무안을 줬다. 그 말을 듣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지녀야 할 품격과 거리 먼 ‘무례’한 태도라고 여겼다. 혹평이 쏟아진 여론에 귀 닫고 엉뚱하게 화살을 기자에게 돌린 정무수석의 정무적 판단이 이런 대통령의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국민이 아닌 대통령만 바라보는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홍 수석 발언 뒤 대통령실 등록기자단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할 의무가 있는 기자가 대통령에게 한 질문을 홍 수석이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고 발언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문을 냈다. 앞서 지역기자단도 “기자들에 대한 눈치주기”라며 “취재나 언론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발언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한국기자협회 부산일보지회도 성명에서 “권력에 굴복하고 비판을 포기한 언론은 존재 이유가 없다”며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초석이며, 이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무다”라고 밝혔다.
홍 수석은 대통령 지지율이 20% 안팎을 오가며 바닥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집권 반환점을 돌 때까지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이 왜 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정치는 파행을 거듭하고, 성장률은 빨간불이 켜지고, 사회는 의대증원 갈등으로 끝없이 대치하고 있다. 국민의 삶은 피폐하고 메말라 가는데, 대통령은 협치는 팽개치고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의 원성이 대통령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형국인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유럽도 20% 넘는 정상이 많지 않다”며 민심과 동떨어진 인식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참모들 교체 등 전반적 쇄신이 왜 필요한지 웅변하고 있다.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로 불린 헬렌 토머스는 “언론은 대통령의 권력 행사에 유일한 감시자”라며 “기자회견은 법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의 법정에 선 대통령, 떳떳한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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