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완은 없었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된 녹취, 단독 보도 등이 쫓아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쏟아지던 이달 초 몽골 국적의 청년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다.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청년의 이름은 강태완(몽골명 타이왕)이다.


몽골에서 태어난 태완은 다섯 살이던 1997년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경기 군포시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던 그가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친구랑 싸우게 됐는데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경찰을 부른다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께서 ‘경찰까지 오게 되면 네가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내가 체류자격이 없다는 걸 처음 인지했다.” 활발한 성격이던 태완은 이 일을 겪은 뒤 말수도 줄고 조용해졌다.


태완은 고등학교 졸업 뒤 다시 차가운 현실의 벽과 마주했다. 모임에 나온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여자친구도 사귀고 멋진 옷도 입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던 태완은 꾀죄죄한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었고, 몸 군데군데엔 멍이 들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친구들도 안 보게 됐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느 공장에 취직해 거기서 8년 정도 일했다. 체류자격이 없는 동안은 항상 집에만 계속 있었던 것 같다.”


태완은 한국에 온 지 24년 만인 2021년 7월 몽골로 자진출국했다. 법무부가 자진출국한 미등록 이주민에게 재입국 기회를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태완이 낯선 땅인 몽골에 있는 동안 법무부는 국내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주아동에게도 체류자격을 주는 방안을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국내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한시적 구제 대상이었다.


2022년 3월 단기체류 비자로 한국에 돌아온 태완은 구제신청을 거쳐 유학(D-2) 비자를 받았다. 한 전문대 전자공학과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태완은 비자를 받자마자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본인 명의로 핸드폰을 개통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태완은 지난 3월 전북 김제시 소재 특장차 제조업체 ‘HR E&I’에 연구원으로 취직했고, 지난 6월엔 거주(F-2) 비자를 받았다. “전북에서 5년 일하면 영주권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들었다. 귀화까지 하는 게 목표다.”


‘강태완’이라는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증을 받으려던 태완의 계획은 지난 8일 끼임 사고로 물거품이 됐다. 태완의 어머니 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는 지난 14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힘들게 비자 받아서 잘 살아보려 했는데…. 우리 아들 너무 억울하다.”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꿈을 꿀 수 있게 됐지만 하루아침에 숨진 몽골 청년의 사연은 거대 양당에 가닿지 못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를 향해 쏟아낸 날이 선 논평 중 강태완은 없었다.


소수자의 삶과 아픔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제도정치의 민낯을 보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다만 익숙한 풍경에 적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 풍경을 처음 보는 것처럼 분노해야 매일 ‘말의 향연’이 벌어지는 여의도에 강태완의 자리도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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