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신뢰와 커뮤니케이션 비용

[언론 다시보기]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명예훼손 판결을 보면 ‘사회적 승인’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그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훼손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맥락에서다.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승인해 준다는 건 어떤 말이나 행동, 일을 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기본적으로 ‘사회적 승인’이 없으면 신뢰를 전제로 하는 일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사례를 하나만 들어보자. 워낙 엉터리 전화 사기가 횡행하다 보니 모르는 번호가 찍히면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필자도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오면 받을지 말지 고민부터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면 문자를 보내겠지’ 하는 생각에 전화를 안 받았다가 중요한 연락을 놓친 적도 있다. 스팸 문자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문자가 와도 링크된 주소를 열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전화든, 문자든, 간단한 의사소통에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신뢰가 무너진 데서 비롯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비용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전달하는 것이 단순 정보든, 정치적 주장이든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언론은 이미 존재할 수 없다. 그건 마치 인적 끊긴 건널목에서 혼자 깜빡이는 신호등 같은 것일 테니 말이다. 언론은 신뢰에 기반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이 ‘사회적 승인’은 안팎에서 무너지고 있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훼손하는 내부의 적은 언론의 품질 문제다. 정파성에 빠져 어느 한쪽을 대놓고 편들거나, ‘우리 보도는 믿고 보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허술한 기사를 내보내거나, 지엽말단적 내용을 침소봉대해서라도 조회 수에 목매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뉴욕타임스가 161년 전 기사에서 사람 이름의 철자 오류를 바로잡은 일을 마치 해외 토픽처럼 보도한다. 한국 언론이 세계적으로 신뢰도 꼴찌라는 기사도 단독이니 속보니 경쟁적으로 보도한다. 그것이 자기 일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외부에서는 언제든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언론을 공격하려는 세력이 넘쳐난다. 공공연히 자신들을 위한 도구가 되기를 요구하고, 언론의 독립성을 깡그리 부정하려 든다. 이런 공격을 방어하면서 언론 신뢰 회복에 앞장서야 할 전현직 언론인들이 오히려 공격에 동참하거나 앞장서기도 한다.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 그에 따른 비용은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한다.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 허위조작정보가 퍼져도 대응이 어렵다. ‘팩트체크’를 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질 않기 때문이다. 너무나 엄청난 손실이다.


언론이 소비자로부터 사회적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언론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경영진과 실무자, 데스크와 기자가 서로 신뢰에 기반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 내부 구성원 사이에서 허물없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언론의 품질을 개선하는 등 사회적 승인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허망한 주문에 불과하다. 신뢰하지 못하는 경영진의 주문은 편집에 대한 간섭일 뿐이고, 신뢰하지 않는 데스크의 질문은 기자에게 압력으로 느껴질 뿐이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뉴스룸 내에서의 간단한 대화조차 구구절절 의도나 배경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허비할 수밖에 없다. 마치 지금 우리 사회가 보이스피싱이나 낚시 문자 때문에 많은 비용을 치르는 것과 똑같다.


‘저 선배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저 후배가 자기 편하려고 하는 말은 아닐 거야’라는 생각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에서 나온다. 구성원들 사이의 승인 문제다. 선배는 후배로부터, 후배는 선배로부터 이런 승인을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뉴스룸 내부의 상호 신뢰가 갖춰져야만 언론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야 부족하나마 각 뉴스룸의 역량을 오롯이 좋은 뉴스 제작에 투입할 수 있다. 이 또한 언론이 신뢰에 기반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고, 안팎으로 쌓는 신뢰가 바로 개별 매체의 경쟁력인 것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