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고 확인하는 기본과 명태균 보도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국회의원 공천 개입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의 입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명씨가 구속되기 전까지 연일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 등에는 그가 ‘흘린’ 한 마디, 과거 발언 한 줄이 다양한 해석을 곁들여 쏟아졌다. 매체 유형이나 이념 성향, 논조 등과 관계없이 모든 언론에 명씨는 뉴스 메이커였다.


단연 명씨가 얽힌 의혹은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 취재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대통령 부인이 정당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정치 브로커가 대통령 부부는 물론 여야 유력 정치인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각종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불법 여론조사를 벌여 선거판을 어지럽혔다는 의혹 등 하나하나가 파급력이 큰 굵직한 의혹이다. 가히 게이트 수준이다.


명씨 발언과 녹취, 언론의 확인 취재로 불법 여론조사,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공천 개입, 창원 국가산단 지정 개입 의혹에 이어 사전 개발 정보를 활용한 지인들의 투기 의혹 등이 나왔다. 명씨 발언의 신빙성을 당시 상황을 따라가며 검증하고, 입체적으로 접근한 언론 보도가 많았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하루 전날 명씨와 나눈 통화 내용은 윤 대통령이 공천에 관여한 정황에 실체가 있음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냈다. 명씨 발언을 정치 브로커의 횡설수설로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명씨 관련 사안을 다루는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엔 아쉬움이 남는다.


사태 초반부터 ‘살라미식 폭로’를 이어온 명씨는 매체를 취사선택하듯 선별적으로 인터뷰에 응하면서 언론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 김건희 여사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언급된 ‘오빠’가 윤 대통령을 가리킨다고 수차례 밝힌 그는 며칠이 지나 “(대통령실의 해명대로 해당 오빠는) 김 여사의 ‘친오빠’가 맞다”고 번복했다. 그러면서 명씨는 “(언론에) 농담했다”며 “언론을 골탕 먹인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명씨는 지난 9일 조사를 받으러 창원지검에 출석할 땐 “언론이 ‘거짓의 산’을 만들어서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에 편승해 “언론이 명씨에게 농락당했다”고 언론을 탓했다.


명씨의 말이 전부 팩트일 수 없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데다 취재 환경이 녹록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의심하고 크로스체크하는 기본을 망각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명씨의 말을 따옴표 처리해 보도하는 행태가 적잖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명씨 관련 의혹을 ‘정쟁’ 수준으로 폄훼하거나 의도적으로 눈감으려는 언론들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보도 축소에 급급하던 2016년 일부 언론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기자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연합뉴스 노사 편집위원회에선 회사가 명씨 관련 취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KBS 기자들은 사측에 ‘명태균 보도 태스크포스(TF)’ 구성을 건의했으나 거부됐다고 한다. 모처럼 명씨 관련 단독 기사(“창원산단 기관장 임명 영향력”…“정상적 절차”)가 있던 지난 12일 저녁 메인뉴스에선 배아줄기세포 이식 소식 등에 밀려 6번째 꼭지로 배치돼 비판이 나왔다.


명씨가 구속된 뒤 살라미식 폭로 보도는 잦아들었다. 이제는 기자들이 발로 뛰며 사실의 조각을 찾고, 실체적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한다. 날 선 취재 경쟁을 통해 국민에게 의혹과 사실을 낱낱이 밝히는 게 언론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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