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형상으로는 임기 반환점(11월10일)을 앞두고 2년 6개월 국정을 돌아보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질상으로는 윤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10%대 낮은 지지율을 수습하기 위한 기자회견이었다. 의혹의 핵심은 연일 흘러나오는 이른바 ‘명태균 파일’,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파일이 가리키는 공천 개입 의혹이다. 대통령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의식해 질문 분야·개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끝장 회견’을 기획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끝난 자리에는 윤 대통령의 변명과 국민의 커져 가는 의구심만 남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야당이 10월31일 공개한 윤 대통령과 명씨의 대화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윤 대통령은 “공관위에서 들고 왔길래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라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전날인 2022년 5월9일의 일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누구를 공천 줘라’ 이런 얘기는 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누구를 꼭 공천 줘라’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건 외압이 아니라 의견”이라고 했다. 여당 공천에 개입한 적 없지만, 설사 자신이 왈가왈부했더라도 대통령이 아닌 당선인 신분이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투다. 명품가방 수수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된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그야말로 악마화시킨 것”이라며 감싸기만 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처신과 관련한 질문인데 “(아내가) 순진한 면도 있다”며 개인 성격의 문제로 돌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140분 기자회견 내내 이런 자세로 일관하면서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럴 거면 왜 기자회견 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허리 숙여 사과한 것인가. 대체 무엇을 사과한 것인지 재차 삼차 묻는 기자들의 질문은 국민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끝내 피해갔다. 사과하는 사람 스스로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사과가 정녕 듣는 이에게 닿길 바란다는 말인가.
질문 기회를 둘러싼 논란도 기자회견의 진정성을 빛바래게 했다. 이번 회견은 기자들이 손을 들면 대통령실 대변인이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총 26명 기자가 질문했는데, MBC·JTBC 기자는 질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금껏 네 번 열린 회견에서 지상파 중에서는 MBC만, 종편·보도채널 중에서는 JTBC만 유일하게 질문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무제한 회견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모종의 제한이 작용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한다.
기자와 대통령의 문답을 일문일답으로 한정하는 방식은 이번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해진 시간에 가능한 한 더 많은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란 취지를 감안해도 기자회견 때마다 아쉬움을 크게 남긴다. 특히 이번엔 무제한 회견을 내세운 만큼 질문 기회를 받은 기자에게 추가 질문까지 허용하는 방식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두루뭉술한 답변을 기자들이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면서 보다 생산적이고 국민이 납득할만한 기자회견이 됐을 수 있다. 대통령실과 기자단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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