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가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을 처음 보도한 뒤, 그 핵심인물로 지목된 명태균씨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9월5일부터 11월3일까지 ‘명태균’으로 검색된 기사는 총 7505건, 사설은 203건에 달한다. 명씨의 실명이 언론에 등장한 건 9월19일부터였으니, 50일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나온 양이 이 정도다. 빅카인즈에서 검색되지 않는 종합편성채널과 인터넷신문 등을 고려하면 실제 독자가 체감하는 보도 양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사가 처음부터 김 여사와 명씨 관련 취재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공천개입 의혹이 나온 뒤에도 김 여사 ‘명품백 사건’ 불기소,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무혐의, ‘김건희 특검법’ 부결 등 영부인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허장성세’ ‘정치 브로커’ 심지어 ‘사기꾼’ 등으로 묘사된 명씨의 발언을 일일이 지면과 뉴스로 옮기는 게 오히려 더 문제라는 시각도 있었다. 경남 창원의 명씨 집 앞에서 며칠씩 ‘뻗치기’를 한 기자들에게도 고민과 갈등이 없지 않았다. 김정우 MBC 정치팀 기자는 10월24일 MBC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다만 지금 의혹이 하루하루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고 있고 이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당사자가 하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면서 “이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기록 측면에서라도 남겨놓고 나중에 검증해나가는 그런 방식이더라도 어쨌든 이거를 전달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명씨 녹취와 인터뷰 등에 언론의 확인 취재가 더해지면서 ‘대선 불법 여론조사’, ‘창원 국가산단 지정 관여’ 의혹 등이 추가로 실체를 드러냈고, 대통령실의 거짓 해명도 언론 보도로 확인됐다. 그러나 여전히 ‘실체가 없다’, ‘물증이 없다’는 지적이나 ‘정쟁’ 수준으로 폄훼하는 시각도 있었다.
김현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0월10일 <아무리 김건희 여사가 밉더라도>란 제목의 칼럼에서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한마디 한마디에 춤추는 우리 언론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명씨의 선택적 과대망상과 협박에 언론은 앞으로도 지면과 마이크를 마냥 빌려줘야 하나”라며 “뚜렷한 범법, 위법 사실 없이 “뭐 하나 걸리겠지”라며 칼만 마구 허공에 휘두르는 양상”이라고 꼬집었다.
박민 KBS 사장도 비슷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박 사장은 10월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명씨 관련 부실 보도에 대한 지적을 받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KBS는 김 여사 공천개입 의혹이 제기된 지 21일 만인 9월26일 ‘뉴스9’에서 명씨가 언급된 첫 보도를 했다. 국회 법사위에서 김 여사와 명씨 등이 야당 단독으로 국감 증인에 채택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명씨가 김 여사와 주고받은 ‘철없는 오빠’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한 10월15일에야 명씨 녹취를 보도했는데 10번째 순서였고, 김 여사 카톡은 대통령실 해명과 여야 반응을 종합해 한 꼭지로만 보도했다.
KBS는 윤 대통령의 공천개입을 시사하는(“김영선이 좀 해줘라”) 명씨와의 통화 내용이 공개된 10월31일에도 방송 뉴스 가운데 유일하게 톱뉴스로 보도하지 않았다. KBS 보도 순서는 8번째였고, 보도 건수도 3꼭지로 지상파와 종편을 통틀어 가장 적었다. KBS 기자들은 “참사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신문 중에선 조선일보가 가장 멀찍이 선 태도를 취해왔다. 조선일보는 김 여사 등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다음 날(9월26일)에야 명씨 관련 보도를 시작했으며, 첫 사설은 10월8일에 나왔다. 경쟁지인 동아일보가 명씨 인터뷰 등 단독 보도를 연이어 내놓은 것과 달리 조선일보는 10월 말까지 단독을 단 두 번 했는데, 이번 사안의 핵심 제보자인 강혜경씨가 보수단체에 고발당했다는 것과 검찰이 명씨가 운영한 여론조사 업체 대표를 압수수색했다는 내용이었다. 의혹과 관련해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검증해 내놓은 보도는 없었다.
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에서도 지적이 나왔다. 독자권익위는 10월14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조선일보의 첫 보도 시점이 다른 신문보다 늦었고 기사 횟수도 타 신문의 절반에서 5분의 1 정도로 적을 만큼 “‘명태균 스캔들’을 다룬 방식은 매우 신중”했다면서 “지금으로 봐서는 그 판단이 빗나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독자권익위는 명씨 관련 의혹을 “한국 정치의 치부를 드러낼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보면서 “적극적인 취재와 평가를 통해 이 문제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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