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박장범 KBS 사장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오는 18~19일 이틀간 열기로 했다. KBS 사장은 정권의 조율을 거쳐 선임됐기에 인사청문회는 요식절차로 진행될 것이다.
방송 문외한이면서도 대통령과의 친분 덕에 지난해 11월 취임한 박민 현 사장의 연임이 유력해 보였다는 점에서 박 후보자의 사장 내정은 의외라는 게 KBS 안팎의 대체적 반응이었다. 하지만 박 후보자가 사장 후보로까지 부상한 과정을 복기해 보면 이 정권의 권력을 누가 좌지우지하고 있는지, 정권이 공영방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속내가 빤히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청문요청안에서 박 후보자를 “뉴스9 앵커를 역임하며 언론인의 자질과 역량을 충분히 입증받았다”고 평가했다. 과연 그럴까. 방송사의 얼굴로 불리는 메인 뉴스 앵커의 존재감은 사회적 이슈나 권력 남용에 대한 촌철살인의 비판으로 만들어진다. 박 후보자는 지난해 11월 앵커로 취임하면서 “정치적 중립이 의심되고 사실확인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는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시청자들에게 약속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가 맡은 KBS 9시 뉴스는 실상 기계적 중립조차 지키지 못했다. 북한과 안보뉴스 보도는 홍수처럼 쏟아졌지만 주요한 정치·사회적 현안들은 외면하거나 소홀히 취급됐다. 사실확인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는 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실상 권력 비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임을 파악하는 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후 박 후보가 진행한 KBS 9시 뉴스의 일 평균 시청자는 168만명으로 전임 앵커(247만명) 시절보다 32%p나 줄었다.
지난해 말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장면이 공개되며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입장은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지난 2월 KBS가 단독 진행한 대통령 신년대담은 이 문제를 확인하고 대통령 부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기회였다. 그런데 그 대담에 진행자로 나선 박 후보자는 김 여사가 받은 명품백을 ‘이른바 파우치, 외국회사 조그마한 백’이라 표현했고, 대통령에게는 ‘이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느냐’고 묻는 등 변죽만 울렸다. 이 대담 이후 김 여사를 ‘정치공작의 희생자’로 규정하려는 대통령실 의도에 KBS가 판을 깔아줬다는 혹평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박 후보자는 최근 KBS 이사회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수입 사치품을 왜 명품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국민적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반면 ‘용산의 심기’는 알뜰하게 살피고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KBS 기자들은 이 대담 이후 자괴감에 빠졌지만, 박 후보자는 이 대담 진행으로 대통령실의 눈에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의도된 것이건 아니건 결국 앵커 자리를 자신의 사장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한 것 아닌가.
검은 것을 검고, 흰 것을 희다고 말하지 못하는 박 후보자에 대한 KBS 기자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33년차부터 지난해 입사한 막내기수까지 500명 가까운 기자들이 연명으로 비판 성명을 냈다. 2017년 고대영 전 사장에 대한 퇴진 연명 성명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탁월한 친화력과 협상능력, 적극적인 자세로 조직 내 신망을 받고 있다”고 한 대통령실의 평가가 얼마나 황당무계한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KBS 구성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박 후보자는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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