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173) 휴가의 조건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장진영(중앙일보), 오세림(전북일보), 홍윤기(서울신문), 김진홍(대구일보), 김범준(한국경제), 박미소(시사IN)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번 여름 휴가의 조건은 딱 2가지였습니다. 숲으로 우거진, 아무도 없는 곳. 회사 일정과 사람에 지쳐 완전한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이라 생각하는 녹색을 원 없이 느껴보고 싶었지요.
하지만 출발하기도 전 소중한 휴가의 하루를 반납해야 했습니다. 중요한 날의 기획 사진을 발제했는데 부득이하게 휴가 마지막 날만 취재가 가능했던 탓이었지요. 머릿속을 완전히 비우고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떠나려던 계획은 출발부터 삐거덕거렸습니다.
도착. 그런데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펜션 사장님도 없고, 다른 여행객들도 없습니다. 잠시 뒤 멀리서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힘겹게 걸어오시더니 “편히 쉬다 가세요”라고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십니다. 근처 카페, 식당에도 여행객이 없습니다. 펜션 구석구석에 열심히 집을 만드는 거미, 바람에 흔들리는 녹색 숲,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던 다람쥐 2마리, 검정도화지인 줄 알았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며칠 전 후배에게 선물 받은 아껴두었던 그림책이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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