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침한 공장 속, 달걀 썩는 냄새… 19세 청년노동자의 죽음

[지역 속으로] 전주페이퍼가 감추려했던 '황화수소 MAX'
김경수 전북일보 사회부 기자

연일 푹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던 6월. 전북 전주시 팔복동의 전주페이퍼공장에서 19세 노동자가 죽었다. 초기사인은 알 수 없음. 유족들과 노동단체들은 즉각 반발을 시작했다. 사망한 청년 노동자의 어머니는 공장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뙤약볕도 가리지 않은 채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회사 측은 연이어 자료를 발표하며, 유족들이 주장하는 ‘황화수소 중독’에 대해 공장 내부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았음을 주장했다. 유족들과 노동단체들은 회사 측의 태도를 지적하며 계속 농성을 이어갔다. 의구심이 생겼다. 당시 구두로 밝혀졌던 사인은 심장비대증으로 인한 심근경색. “19세 청년의 사망원인이 심장마비?”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 전주페이퍼가 청년의 사망 당시 상황을 똑같이 재연한 뒤, 언론 공개 현장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전주페이퍼 관계자에게 전화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공개 조사 시간은 일요일이었던 7월7일 오전 8시. 공장으로 향했다.

7월7일 전주페이퍼는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공장에서 19세 청년노동자 사망사고 현장 공개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김경수 기자가 촬영한 영상에는 유해물질 검출기 수치가 최대치인 'MAX'를 나타냈다. /김경수 제공

갑작스런 회사의 합의·좋지 않던 나의 몸

공장에 도착했을 때 회사 측은 “절대 황화수소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였다. 사전 브리핑에서도. 사망자와 동일한 시간대에 조사를 하기 위해 기다렸던 공장 내부에서도. 그들의 태도는 일관됐다.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였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냐는 질문에도 공장 관계자들은 “착용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자신만만해 보였다. 현장 재연이 시작됐다. 일주일 동안 멈췄던 공장에 다시 원료가 공급됐고, 노동자의 사망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 재연됐다.


사망한 노동자가 발견된 장소로 향했다. 현장을 향하던 약 50m 동안에도 달걀 썩는 듯한 냄새가 났다. 회사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원래 공장에서 항시 나는 냄새”라고 답했다. 사망 장소는 생각보다 좁고, 음침했다.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다칠 수 있었다. 사망 현장에 도착한 뒤, 회사 측은 측정을 하겠다며 원료가 공급되는 곳 가까이에 측정기를 가져다 댔다. 들려오는 소리는 ‘삐비비빅’. 무언가 검출됐다. 회사 측에 설명을 요구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게 고장이 났다, 왜 이러지”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언쟁이 오간 뒤, 회사는 황화수소가 검출된 것을 인정했다. 측정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후 회사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기자들을 돌려보냈다. 당시 회사가 발표한 황화수소 측정 수치는 ‘4~5ppm’이었다. 약 2시간 뒤, 회사 측은 갑작스레 유족과의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약 2주가량 지연됐던 합의가 검출 이후 갑작스레 이뤄진 것이다. 그러면서 회사 측은 “기자들의 공개조사와 함께 유족과의 합의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며 “접점에 도달했을 뿐이다”고 밝혔다.

7월7일 전주페이퍼가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공장에서 진행한 19세 청년노동자 사망사고 현장 공개조사에서 김경수 기자(사진 가운데)가 황화수소 측정기를 촬영하고 있다. /김경수 제공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새로운 국면을 맞았기에 기사를 마감하고 집으로 퇴근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평소 감기조차 잘 걸리지 않는 몸이 마치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좋지 않았다. 기침이 계속됐고, 머리가 아팠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도 계속 몸이 좋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가 왜 아프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망 현장을 찾았을 때 촬영한 동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영상을 자세히 보니 측정기에 쓰여있던 수치는 99.9ppm. 잠시 뒤, ‘MAX’로 바뀌었다. 일단 측정기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약 120만원 상당이었던 해당 측정기는 다양한 유해 물질을 1~100ppm까지 측정할 수 있는 장비였다. 다음 날 아침, 해당 사진을 당시 취재를 도와주시던 교수님께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교수님의 대답은 “그렇게 보이네요”였다. 회사 발표와 달리 자칫 사람이 죽을 수 있는 100ppm 이상의 황화수소가 검출된 것이었다.

김경수 전북일보 사회부 기자.

진실은 무엇일까

19세 노동자가 사망한 지 벌써 3개월 이상이 지났다. 아직도 경찰 조사는 끝나지 않은 상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망한 청년의 몸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다. 죽은 사람이 있고, 죽일 수 있는 ‘황화수소’가 검출됐다. 죽은 원인은 아니라고 한다. 해외에서 작성된 논문들을 찾아보니, 황화수소로 인해 사망한 시체들에서 검안으로 볼 수 있는 초록색 반점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와 일반적인 피·소변 검사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찾아 보도했다. 여러 전문가들도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을 작성하고 있는 9월29일. 아직 해당 사건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론보다는 진실이 궁금하다. 꿈 많던 19세 청년노동자는 왜 죽었을까. 또 왜 죽었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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