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엔 늘 저항이 따른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김지환 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구멍 막기 법안(Closing the Loopholes bill)이 의회를 통과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2월 엑스(X·옛 트위터)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호주 공정노동법에 뚫려 있는 구멍을 메우는 개정안이 빛을 보게 됐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 개정안은 특수고용직인 화물기사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제 격인 안전운임제를 부활시키는 내용,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가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 등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틈날 때마다 노동약자 보호를 입에 올리지만 노동법 구멍을 메우기 위한 법·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한국 노동법의 구멍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비임금노동자 등 세 분야에 가장 크게 뚫려 있다. 첫 번째 구멍인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연차 유급휴가, 해고제한·부당해고 구제신청, 주 52시간 제한 등 근로기준법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5일 전국 기관장 회의에서 “오랜 기간 논의됐지만 답보 상태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지만 노사 간 이견이 첨예한 쟁점이다. 이 현안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진정성과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두 번째 구멍은 하청 노동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다. 하청 노동자가 노조를 꾸려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안은 두 번이나 재의요구권(거부권)에 가로막혔다. 이는 원청의 책임 강화라는 전 세계 흐름과 어긋난다.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최근 아마존이 하청업체 배송기사의 ‘공동 사용자’라는 판단을 잇달아 내놓았다. 유럽의회는 6월 공급망 내 노동인권에 대한 원청 책임을 의무화한 공급망 실사지침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산업현장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이유로 노조법 개정안에 반대만 할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 구멍은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 분야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태웠지만, 오늘의 노동자들은 태워버릴 노동법이 없다.”


정부는 비임금노동자 지원·보호를 위한 ‘노동약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구멍의 위치는 제대로 찾았다. 하지만 구멍을 메우는 방식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노동약자법은 노동자이지만 자영업자로 위장된 이들의 사용자를 찾아 그 사용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방식이 아니다. 공제회 설치 지원, 분쟁 발생 시 조정 지원, 표준계약서 마련 등 국가의 의무만 규정하는 방식이라 노동계는 ‘사용자 책임 삭제법’이라고 비판한다. 사용자 찾기를 제쳐두는 만큼 사용자단체 반발은 약하겠지만 변죽만 울린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동법에 뚫린 구멍을 막는 과정엔 사용자들의 저항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지 않았던가. “개혁에는 늘 저항이 따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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