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무서워 정당을 이렇게 운영하다니

[언론 다시보기] 윤형중 LAB2050 대표

윤형중 LAB2050 대표

한국의 정당들은 지난 20년간 법을 제대로 지키며 운영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 사실을 정당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알고 있으나, 언론이 무서워서 혹은 언론이 만들어낼 여론이 무서워서 이 상태를 방치한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현행 정당법 제30조에는 정당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법률에선 ‘정당의 유급사무직원수 제한’이란 표현을 쓴다. 이 법률의 1항은 “정당에 둘 수 있는 유급사무직원은 중앙당에는 100명을 초과할 수 없으며, 시·도당에는 총 100인 이내에서 각 시·도당별로 중앙당이 정한다”이다. 일상적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중앙당의 직원이 100명이 넘지 않고, 16개의 시·도당을 합쳐 100명 이내이니 광역지자체를 하나씩 맡는 각 시·도당의 직원이 6명 정도라는 의미다. 과연 정당들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만일 불시에 양대 정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중앙당사로 들어가 직원 수를 셀 수 있다면 100명이 훌쩍 넘는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속 국회의원만 278명인 거대 양당이 어떻게 정당법 제30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100명 이상의 직원들로 운영되는 걸까.


비밀은 뜬금없게도 정책정당에 있다. 의외로 우리의 정치 제도에는 정당의 정책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규정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정치자금법 제28조에 “경상보조금을 지급받은 정당은 그 경상보조금 총액의 100분의 30 이상은 정책연구소에 사용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2022년 정책연구소 연간 활동실적 분석집’을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경상보조금 222억3000만원과 198억1000만원을 받았고, 이 중 각각 90억9000만원, 91억4000만원을 정책연구소에 지원했다. 한 해에 100억원 가까이를 쓰는 정책연구소가 우리 정치권엔 둘이나 있다. 문제는 돈의 용처다. 그 돈의 상당액을 인건비로 쓰고, 그렇게 고용한 직원을 중앙당이나 당 정책위에 파견 보낸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였다. 연구소가 여론조사에 상당한 재원을 투입한다는 점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회법에는 교섭단체에 속하는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보좌하기 위한 ‘정책연구위원’이란 직종을 규정하고 있다. 관련 규칙에 따르면 정책연구위원은 총 77명이고, 이 중 절반이 넘는 45명이 고위 공무원에 해당되는 직급(1·2급)이다. 여기에 44명의 행정보조요원이 추가로 배치된다. 즉 국회의원 보좌진과는 별도로 양대 정당에만 총 121명의 정책 인력이 지원되는데, 이들 중 대다수도 중앙당에 파견돼 일상적인 당무를 수행한다. 결국 정책정당을 만들라며 지원하는 여러 제도가 비현실적인 정당법상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활용되는 셈이다.


정당법에 직원 수 규제는 2000년에 처음 생겼고, 2004년 정치개혁 관련 입법(일명 오세훈법)으로 상한 100명이 고정됐다. 정당 조직을 줄여 고비용 구조를 바꾸겠단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정부 재정 규모는 3배 이상, 공무원 인건비는 2.5배로 늘었고, 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역할도 커졌다. 심지어 정당의 당원 수도 지난 20년간 5배 넘게 늘었다. 달라진 국회와 정당의 역할과 위상을 감안하면 직원 수 100명 규제는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지만, 누구라도 이 의제를 꺼내기 조심스러워한다. 정치권이 밥그릇을 늘린다는 언론의 비판이 두려워서다. 언론으로선 비판을 하더라도 구조를 알고서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정치인들은 그런 비판을 받고 싶지 않고, 그로 인한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도 않다. 정책정당을 위한 제도들을 정상화할 의지도, 관심도 부족하다. 그 결과는 양대 정당에서 정부 부처 하나를 담당하는 정책 전문인력이 평균적으로 단 한 명에 그치는 황당한 현실이다. 국민 삶을 챙기는 정책이 정치에서 소외되는 데에는 이렇게 다 이유가 있다. 정치권은 지난 20년간 말로만 정책정당을 외치면서 실제론 정책에 자원을 별로 투입하지 않았고, 정쟁이 지배하는 정치를 조장하고 방치했다. 정치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의 관행적인 보도 태도도 이런 상황에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니 중생이 나설 수밖에. 정당 바깥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바꿀 수 있다. 그런 움직임이 있을 때, 언론이 이 사안을 제대로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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