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다 믿는다"는 북유럽, 신뢰엔 '무한 책임' 있었다

[이슈 인사이드 | 환경]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전문기자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전문기자

“이 사람들은 한다면 하는 겁니다. 그래도 안되겠다 싶으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고요. 상호 신뢰죠.”


아이슬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 기후변화 대응 출장 중 만난 통역·코디네이터에게 가장 자주 들은 말이 바로 ‘신뢰’였다. 시민이 정부의 기후 정책을 믿고, 정부도 기업의 ESG경영 등 기후 대응을 신뢰한다는 이야기였다.


검증과 의심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전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북유럽 국가 내 신뢰의 배경에는 강력한 규제와 철저한 투명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스웨덴 정부는 오래된 산업단지를 ‘친환경·지속가능 도시’인 함말비 허스타드와 로열 씨포트로 탈바꿈시켰다. 빌라 한가운데에 오리·백조가 노니는 호수가 있었고, 집집마다 넓은 정원이 있어서 오래전 굴뚝 산업이 융성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염된 지역의 정화를 어떻게 했는지 물으면, 해당 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생태 복원 완료와 주거단지 마련을) 승인했다”는 짧은 대답을 내놨다. 정화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됐고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묻자, “(자신의 일이 아니라)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저 정부가 했다는 믿음 하나로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데 왜 묻냐는 모양새다.


이 대답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라, 상호 무한책임에 가까운 신뢰 체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매우 엄격한 법률과 규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법적 책임이 강화된다.


실제 스웨덴의 환경법은 위반 시 상상을 초월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2013년 칼링 지역에서 PFAS(과불화화합물) 오염이 발생했을 때, 관련 기업은 오염 피해 주민들에게 거액의 법적 배상을 명령받았다. 또한, 2019년 대기오염 초과 배출로 적발된 기업과 2022년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으로 적발된 ‘국민 기업’ 에릭슨의 대규모 벌금 사례는 스웨덴의 환경 규제가 얼마나 철저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스웨덴은 이러한 법적 규제와 더불어, 2018년에 제정한 ‘기후법’을 통해 탄소 배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배출 허용량을 초과하는 기업들에게는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며, 이를 통해 산업계의 탄소 배출을 억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압박이 산업을 위축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출된 탄소를 흡수하는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계는 저탄소 첨단 기술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강한 탄소 감축 압박이 산업 위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한국 내 일각의 우려와 달리, 북유럽 사례는 탄소 감축 압박이 오히려 산업 혁신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북유럽의 ‘신뢰’는 단순한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 철저한 규제,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강력한 법적 제재가 뒷받침된 결과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신뢰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한국이 북유럽식 기후 신뢰를 형성하려면 먼저 법적 장치와 사회적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탄소 배출권 거래제와 환경 오염 방지법을 통해 기업들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정부와 기업이 정책과 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 투명한 정책 실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장기적으로 사회적 신뢰가 쌓이고, 한국에서도 북유럽과 같은 기후 대응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면 한국에서도 기후 대응에서 정부와 기업, 시민 간의 강력한 신뢰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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