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끓을수록, 뉴스룸도 끓어오른다

국민, 중앙, 조선, 한겨레, MBC 등
국내 주요 언론사들 기후위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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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찾아왔다. 날씨 앱에 접속하면 항상 뜨던 ‘폭염주의보’ 안내나 ‘열대야 OO일째 계속’이라는 기사는 더는 나오지 않는다. 지독한 더위는 기록도 잔뜩 남겼다. 중앙일보가 1일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의 기온 데이터를 분석해 쓴 기사를 보면 올여름(6~8월) 전국 평균 기온은 25.6도로 1973년 전국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고 한다. 더위가 가장 극심했던 8월에는 평균기온과 최고기온, 최저기온 모두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열대야 일수(전국 평균)도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문제는 올여름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여름에 비하면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팀이 없어도, 환경부를 출입하지 않아도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해 보도하는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여름 지독한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더 실감하게 된 영향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8월31일자 5면 기사. 높아진 바닷물 온도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실태를 보도했다.

폭염이 끝났다고 한숨을 돌릴 때가 아니다. 우리 앞엔 폭염이 남긴 많은 청구서가 쌓여 있다. 8월에 국내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건 단순히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폭염에 급등한 채소와 과일값은 물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 우려를 키우고 있다.


폭염의 순기능(?)도 있긴 하다. 폭염을 부채질하는 기후변화를 ‘내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몇몇 언론, 소수의 기자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런데 최근엔 기후팀에 속하거나 환경부를 출입하지 않아도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기자들이 많아졌다. 조선일보가 8월31일자 1면과 5면 등에 보도한 ‘뜨거운 바다’ 르포 기사도 그렇다. 경남과 호남 등 지역 주재기자들이 해수 온도 상승으로 양식장 등 물고기가 집단 폐사한 실태를 취재했다. 이와 비슷한 기사가 전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부두를 가득 메운 죽은 물고기 떼 사진이 주는 충격은 컸다.

기후팀이 없어도, 환경부를 출입하지 않아도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해 보도하는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여름 지독한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더 실감하게 된 영향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사진부 기자들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은 지난 1일부터 5주 동안 ‘뜨거운 지구, 기후위기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보도한다.

국민일보는 2일 ‘뜨거운 지구, 기후위기 현장을 가다’ 연속 보도를 시작했다. 1면에 이어 14면과 15면을 녹아내리는 북극의 사진이 가득 메웠다. 이 시리즈는 취재부서가 아닌 사진부에서 기획한 것으로, 사진부 기자 전원이 특별취재팀으로 참여했다. 북극 외에도 아프리카, 유럽, 호주, 아시아 등의 기후위기 현장을 생생한 사진으로 5주에 걸쳐 보여줄 예정이다. 이런 기사엔 으레 그렇듯 ‘이미 망했다’ 식의 체념과 절망 섞인 반응이 따라붙는데, 김지훈 기자는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개개인의 작은 실천들이 모이면 큰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문제에 오래 천착해온 언론사나 기자들도 이제는 뭔가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할 때라는 데 공감한다. 기후변화로 불거진 ‘현상’에만 주목하거나 반짝 관심에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는 “기후위기는 폭염이나 작년 오송 참사 같이 인명 피해가 있을 때 반짝 주목받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며 “1년 내내 계속 보도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기후위기가 모든 것에 기본으로 깔린 상태에서 주목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는 좀 요원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후팀이 없어도, 환경부를 출입하지 않아도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해 보도하는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여름 지독한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더 실감하게 된 영향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지난달 29일 첫 기후소송 판결 의미를 전하는 한겨레신문 8월30일자 2면 머리기사.

최근 한겨레는 기존의 기후환경팀을 지구환경부로 확대 개편했는데, 기후변화 문제를 더 넓은 시야로 다뤄보자는 취지가 담겼다. 과학, 생태, 동물권 이슈 등 다루는 범위도 넓어졌다. 최원형 부장은 독자가 문제를 체감하게 만드는 것과 기자들의 전문성 강화를 강조했다. 온실가스 감축만 하더라도 얼마나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풀어서 설명해줌으로써 “정책과 인식의 괴리를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기후변화뿐 아니라 지구환경, 생태 관련 담론 등 기자들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기후팀이 없어도, 환경부를 출입하지 않아도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해 보도하는 기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올여름 지독한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더 실감하게 된 영향으로 보인다. MBC 기후환경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영향 등을 점검하는 ‘기후변화청구서’ 연속 기획을 지난 6월부터 보도하고 있다.

MBC 기후환경팀이 하는 고민도 비슷하다. 노경진 팀장은 “어떻게 우리 삶에 밀접한 문제로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심각함을 같이 고민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MBC 기후환경팀이 택한 방식은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는 것으로, 지난 6월 시작한 ‘기후변화청구서’ 기획도 그런 맥락에 있다. “기후변화가 우리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실체에 접근하기 편하다”고 이 팀의 차현진 기자는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물가가 폭등하는 ‘기후플레이션’, 폭우와 폭염에 ‘포트홀(도로파임)’ 발생이 많아져 도로 유지와 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날 거란 경고 등이 그것이다. 8월28일 포트홀 위험성을 보도한 다음 날 땅꺼짐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 크게 놀라기도 했다. 노 팀장은 “땅꺼짐 사고가 기후변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진짜 오고 있구나, 기후변화로 인한 일생 생활 위협이 실제로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같은 날(8월2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지 않은 현행법(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했다. 국민의 기본권인 ‘환경권’과 국가의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강화된 기후위기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치권과 기업은 물론, 이를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도 커진 셈이다. 김기범 기자는 “기후위기는 현재 닥친 일이기도 하지만 미래 세대가 더 심각한 일을 많이 겪게 될 것”이라며 “미래 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책임에 대해 언론이 더 많이 다뤄야 하고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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