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 마트주차장서 1만보, 1500명분 급식 만들기… 기자 살려

그 기사에서 '땀 냄새'가 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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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매직’도 없이 길어지는 폭염. 뙤약볕 아래 바삐 약속과 취재현장을 오가다 보면 시원한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이 더위를 피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얼음물은커녕 실내에서 잠시 숨돌릴 시간조차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극한의 야외노동. 그게 얼마나 고된지는 곁에서 잠시 지켜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직접 겪어 보겠다며 현장에 뛰어든 기자들도 있다. 펄펄 끓는 폭염과 그보다 더한 현장에 내던져진 위험한 노동을 몸소 고발하고 나선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낮 최고기온이 32도를 기록한 날, 자전거로 배달 일에 도전한 김기화 KBS 기자. 카메라감독이 툭 던진 질문에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취재고 나발이고 그냥 쉬고 싶더라고요”

지난해 6월, 코스트코 광명점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노동을 하던 29살 김동호씨가 숨졌다. 김씨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폐색전증. 온열로 인한 과도한 탈수 때문이었다. 사망 당일 최고기온은 35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김씨는 그날 주차장에서 종일 카트를 옮기며 2만9000보를 걸었다.


김씨가 죽은 그날처럼 때 이른 폭염이 덮친 6월의 어느 날. KBS 시사 다큐 ‘더 보다’의 김기화 기자는 같은 마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날 최고기온은 32도였지만 주차장 안 온도는 35도까지 치솟았다. 그곳에서 김 기자는 두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봤다. 1만1000보를 걷고 나자 체온이 37.7도까지 올랐고, 정신은 혼미해졌다. “처음엔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처럼 8시간 있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1시간 반쯤 되니까 취재고 나발이고 제발 그냥 쉬고 싶은 거예요.”


주차장 안을 뜨겁게 달구는 건 한여름 열기만이 아니다. 자동차 엔진이 뿜어내는 열기도 만만치 않다. 시원하게 차를 유지하려고 시동을 켜둔 채 장을 보러 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저는 처음 들었어요. 우리야 가서 빨리 도망치듯 장 보고 오면 되지만, 그분들에게는 일터잖아요. 체험을 안 해봤으면 겉핥기밖에 안 됐겠구나, 생각했죠.”

낮 최고기온이 32도를 기록한 날, 자전거로 배달 일에 도전한 김기화 KBS 기자. 카메라감독이 툭 던진 질문에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마트 주차장에서 두 시간 만에 철수 결정을 내렸던 김 기자는 다시 낮 최고기온이 32도를 찍은 날, 배달 일에 도전했다. “원래는 택배나 집하장 일을 하고 싶었는데 쿠팡 같은데 보도가 많이 나오다 보니 보안이 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건설 현장에 가도 안 써줄 거 같고. 온열 질환에 노출된 노동자 중에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동노동자라고 생각했죠.”


오토바이가 없어 갖고 있던 자전거로 배달 앱에 등록하고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성신여대입구에서부터 콜을 받기 시작했다. 언덕도 많고, 아파트보다 빌라나 주택이 많은 곳이라 이동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그림’을 의식한 선택이었겠으나, 현실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배달 경로나 지형은 복잡하고, 특히 계단이 많았다. “주문할 때는 2D 맵으로 보지만 배달기사들은 3D로 지하부터 지상 몇 층까지 왔다 갔다 하거든요.” 무엇보다 시원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건 “공포”였다.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그만하고 싶어요”란 말이 튀어나왔다. 배달 거리도 길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성신여대 주변을 다닐 거로 생각했는데, 그의 동선은 성균관대, 종로, 인사동을 거쳐 5시간 뒤 서대문에서 끝났다. 15년차 기자인 그는 새삼 깨달았다. “역시나 현장은 다르다.”

정희윤 JTBC 기자는 배달 라이더에 택배 배송까지, 종일 이동노동자로 일했다.

“최소 반나절은 해봐야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죠”

정희윤 JTBC 기자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첫날, 배달 라이더에 이어 택배 배송까지 꼬박 7시간을 일했다. 배달 시작 30분 만에 옷이 다 젖고 헬멧 속에 땀이 차는 걸 경험하며 “‘신속 배달’이란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단 생각”을 했다.


이날 밥도 못 먹고 종일 흘린 땀은 단 4분짜리 리포트에 기록됐다. 이럴 거면 한두 시간만 바짝 일해도 되지 않았을까. 정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 기자가 놀러 갔구나’ 혹은 일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평생 이 일을 할 순 없어도 반나절 이상은 해봐야 하루종일 하면 얼마나 힘들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지난달엔 고추 농가를 찾아 찜통인 비닐하우스에서 직접 고추를 따기도 했다. 고되기로 유명한 고추 농사. 그 탓에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고추밭이 점점 줄고, 국내산 고추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데, 얼마나 힘들길래 그런 건지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농장주가 “병난다”고 걱정하는 데도 굳이 일손을 보탠 건 단지 ‘그림’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제 인생 신조 같은 게 ‘겪어 보지 않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건데, 일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직접 겪지 않고는 그분들의 힘듦을 한두 줄로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성향과 성격에 더해 팀장의 ‘한 마디’도 그를 현장 깊숙이 밀어 넣는 역할을 했다. 밀착카메라팀에 배정된 지 얼마 안 돼 쓰레기로 뒤덮인 대청호 현장 취재를 갔을 때, 팀장이 넌지시 던진 질문. “너의 차별점이 뭐니?” 말문이 턱 막혔던 차에 “운이 좋게도” 썩은 물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심각한 악취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같이 간 구조대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썩다 못해 녹아내리던 그 물고기를 들어 보였다. 그때 그가 보인 생생한 반응은 시청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됐고, 그는 “이렇게 접근하면 시청자도 다르게 보는구나 싶어서 그 뒤로 제가 직접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희윤 JTBC 기자는 배달 라이더에 택배 배송까지, 종일 이동노동자로 일했다.

“객관성을 잃어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손고운 한겨레21 기자는 조금 다른 생각이었다. 그는 “기자가 직접 체험하고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었다”고 했다. 그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게 된 것도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팀장과 편집장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일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글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강도와 위험성”이라는 것을.


손 기자는 지난 6월 서울 서대문의 한 초등학교와 7월 서초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조리실무사 일일 대체근로자로 일했다.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구인 공고를 보고 전화를 하니 최소한의 서류 제출도, 면접도 없이 바로 “오라”고 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일자리구나” 싶었다. 학교를 떠나는 조리실무사는 늘고, 하려는 사람은 줄고 있다. 빈자리는 일일 대체근로자가 채우는데, 이마저도 부족한 곳이 많다. 지난 5월 논란이 된 영동중 ‘부실급식’ 사태가 그 결과다.


왜 떠날까. 손 기자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급식실 일은 주방에서 밥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식수인원(배식받을 사람)이 1500명을 넘으면 “음식을 만든다는 느낌보다는 막노동”에 가깝다. 나물을 무칠 때도 손이 아닌 팔과 온몸을 써야 하고, ‘삽질’은 기본이었다. 무거운 식재료도 번쩍 들어야 했다. 푹푹 찌는 조리실에서 “매일 김장을 하는” 셈이었다. 조리가 끝난 뒤엔 식판과 수저 세척, 조리실 청소와 위생용품 세탁까지. 고강도 노동이 8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렇게 20년을 일해도 조리실무사가 받는 월급은 세후 200만원대란다. 손 기자는 “노동강도와 위험도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손고운 한겨레21 기자는 이틀간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 일일 대체근로자로 일했다. 잠입 취재 특성상 촬영은 하지 못하고 추후 취재 내용 등을 영상에 출연해 설명하고 있다.


하루 일하고 나서 입안 세 군데가 헐었다. 손가락은 마디마디가 아팠다. 뜨거운 물로 식판을 박박 닦은 탓인지 화기(불기운)가 1주일 동안 가시지 않아서 매일 아침 눈 뜨면 세면대에 찬물을 받아 마사지해야 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현장을 경험해야만 알 게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사자가 되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널리즘 책에서 본 그런 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거죠, 머릿속에서. 그런데 취재 전에 어떤 조리실무사가 ‘내 손이 틀어졌어’ 하고 보여줬을 때 기분이랑, 제가 하루 겪고 매일 화기를 느끼면서 실감하는 노동강도는 다른 거예요. 객관성을 잃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일회성’이라 해도… “진심을 다합니다”

물론 객관성이 생명인 기사가 있고, 모든 기사를 이렇게 쓸 수도 없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뛰어들거나 ‘당사자’가 되어 봐야만 알 수 있는 진실도 있는 법이다. 아울러 그런 기사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더 설득력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손고운 한겨레21 기자가 지난 6월 서울 한 학교 급식실에서 일일 대체 근로 근무를 끝내고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 /손고운 제공


김기화 기자는 무엇보다 “진정성”을 강조했다. “설렁설렁하며 땀 좀 내는 느낌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더운 날 일 한다니까 팀장과 부장은 걱정도 많이 했는데, 실제 그런 현장에 노동자들이 내던져져 있는 거잖아요. 국가가 만든 폭염시 작업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면 보여주는 수밖에 없죠.”


정희윤 기자는 “먼저 취재 대상의 입장을 잘 이해해야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고, “그러려면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취재하는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시청자(독자)에게 공감을 바랄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취재(체험)가 어디까지나 ‘일회성’이라는 한계는 인정한다. 그래서 더 진심을 다하려고 한다. “최대한 취재하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취재 후에는 기자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나름의 방식대로 제가 취재했던 대상에 기여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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