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 사회'라는 착각의 실체

[이슈 인사이드 | 젠더] 정지혜 세계일보 외교안보부 기자

정지혜 세계일보 외교안보부 기자

‘한국이 여초 사회라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남성의 자살 시도가 증가했다고?’


지난달 말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김기덕)이 발표한 보도자료 속 황당무계한 분석에 두 눈을 의심했다. 한강 교량에서 투신을 시도한 남성이 늘어난 건 우리 사회가 ‘여초화’된 데 따른 영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구태한 메시지가 2024년에도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다니 암담했다. 원문을 보니 “과거 한국이 가부장제와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하던 시대였음과 달리 2023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 5% 많은 여초사회로 변화되기 시작했다”며 “여성의 증가에 따라 남성의 노동력 부족, 결혼 상대를 구하기 어려운 남성의 증가, 여성의 사회 참여로 인한 남녀역할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발생”한 것이 남성의 자살이 늘어난 일부 원인이라고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여초 사회’는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음 ②여성이 사회를 주도하게 됨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1번의 경우 전체 인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많긴 하지만, 이는 60대 이상 연령대에서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훨씬 높기 때문일 뿐 노동·결혼시장에 뛰어드는 연령대에선 해당사항이 없다.


특히 김 의원이 언급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생)는 여아 선별 낙태로 인해 ‘남성 과잉’이 심각하다고 지적되는 대표적인 성비불균형 세대다. 남성 인구가 여성보다 많기 때문에 결혼 상대를 못 찾는 남성이 증가한 것이고, 이 또한 아들만 낳겠다며 딸을 태어나지도 못하게 한 성차별적 관행의 업보인 마당에 정반대의 엉터리 주장을 한 것이다.


2번은 더 큰 문제다. 객관적 근거 없이 “여성 지배적 사회로 변화했다”며 현상을 왜곡한 것을 넘어, 이를 ‘극복’해야 할 문제로까지 지목했다.


30년 가까이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 부동의 1위, 유리천장 지수 꼴찌, 국가 성평등지수(2022)에서 ‘사회참여’(69.8) 부문 점수가 가장 낮은 점, 여성 2명 중 1명은 결혼·출산으로 인한 임금·고용 불이익을 뜻하는 ‘모성 페널티’를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 등 통계상 팩트만 보더라도 여초 사회와는 분명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자꾸만 나오는 “여자가 너무 많다”거나 “(이제 여자들과도 경쟁하니) 남자들이 너무 힘들다”는 식의 담론은 김 의원의 해명처럼 “주관적 의견” 이상이 될 수 없음에도 공론장에 하나의 사실처럼 버젓이 등장해왔다.


최소한의 수치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일각의 감정적 호소에 손쉽게 편승하는 이러한 정치적 게으름은 기득권 남성 사회가 같은 남성에 대해 갖는 편향적 공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는 청년 남성의 좌절을 애꿎은 또래 여성의 탓으로 돌리며 불필요한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진짜 이유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위험하고 해롭다.


논란의 한복판에서 끝까지 “여초 사회가 아니다”라고는 하지 않은 김 의원의 소신은 비단 그의 것만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여성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해하기는커녕 무신경하게 희생양 삼기 바쁜 ‘남초 사회’는 오늘도 여자 탓이나 하며 고장난 성평등 시계를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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