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 윤 대통령 '짜깁기 영상' 삭제목록 공개 거부

국민생명보호·범죄수사 지장 준다며 비공개
오픈넷 "밀실행정, 위법한 공권력 행사"
대통령 명예훼손 피의자들 검찰 송치할 듯

  • 페이스북
  • 트위치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부패하고 무능하다며 비난하는 것처럼 짜깁기된 영상 수십 건을 인터넷 공간에서 지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목록을 공개하라는 청구를 거부했다. 확산을 막아야 하는 ‘유해’ 영상인 데다 공개하면 안보에 위협이 되고 경찰 수사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영상 제작자와 공유자들을 수사해 온 경찰은 이들을 조만간 검찰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방심위는 삭제된 윤 대통령 ‘짜깁기 영상’의 인터넷 주소를 공개하라는 사단법인 오픈넷의 청구에 지난달 17일 비공개를 결정했다. 방심위는 2월 서울경찰청의 요청을 받고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퍼진 같은 영상 22건을 삭제했다. 방심위가 시정요구를 의결하면 해외사업자인 틱톡와 인스타그램이 요청에 따라 자율적으로 삭제하는 식이다.

2022년 11월 틱톡에 퍼진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영상.

짜깁기된 영상의 원본은 2022년 2월 대선 때 윤석열 당시 후보가 TV조선을 통해 발표한 5분 길이 연설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 발언이 ‘윤석열 정부’를 향하게 주어가 바뀌어 편집됐다. 방심위가 심의에 적용한 근거는 이미 여러 번 정치적 논란이 된 ‘사회적 혼란 야기’였다.

방심위는 영상의 인터넷 주소를 공개하면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 재산 보호’와 ‘범죄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주고 ‘개인정보’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오픈넷에 보낸 결정통지서에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기자협회보는 주소 공개가 어떻게 안보에 위협이 되고 경찰의 수사를 어렵게 만든다고 판단했는지 물었지만 역시 자세히 답하지 않았다.

방심위는 다만 서면을 통해 “공개되면 위원회가 스스로 불법‧유해정보를 유통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서울경찰청에서 수사 중인 사건을 위원회로 심의요청한 사안임을 양지해 달라”고 답했다. 정치적 표현물을 유해정보로 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도 구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오픈넷은 16일 비공개 결정에 이의신청을 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행정처분으로 기본권을 제한받는 당사자와 국민은 처분 대상이 무엇인지 알권리가 있다”며 비공개는 “밀실 행정이자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주장했다. 방심위가 어떤 정보를 삭제하는지 알아야 적법한지 감시하거나 당사자가 법적으로 다툴 기회도 있다는 것이다.

방심위는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할 때 당사자인 작성자에게 알리지 않는다. 2009년 최병성 목사는 시멘트 제조 공정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취재해 블로그에 올린 연재물 중 4건이 의견진술 없이 삭제돼 반발하기도 했다. 최 목사의 비판이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한국양회공업협회가 심의 민원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이듬해 서울고등법원이 방심위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지만 게시물은 이미 삭제돼 복구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윤 대통령 짜깁기 영상 수사를 거의 마무리 지은 경찰은 사건을 곧 검찰로 보낼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윤 대통령의 명예 훼손한 혐의로 영상 제작자를 비롯해 공유한 사람 등 모두 10명을 입건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두 명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압수수색 당했다.

공동변호인단의 최석군 변호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강제수사까지 하는 건 정도를 한참 넘었다”며 “모두 조용히 있는 분위기지만 민주화 이후 이 정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건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술 마시다 대통령을 욕했다고 잡아가는 막걸리 보안법의 재현”이라며 “디지털 ‘막걸리 보안법’이라 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성동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