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 의식했나... KBS 이사회 '조직개편' 안건 상정 연기

KBS PD협·기술인협 및 3개 사내노조 KBS 구성원 100여명
이사회 앞두고 조직개편 반대 피켓시위

야권 KBS 이사들 "사측, 사전 개정안 자료 미제출 등 안건 상정요건 미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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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직제규정 개정안’ 의결 안건이 다뤄지는 KBS 이사회 개최 40여분 전. KBS 본관 2층 로비엔 ‘소통 없는 조직개편, 결과는 실패다’ ‘짬짜미 조직개악 지금 즉시 폐기하라’ 문구가 써진 피켓을 든 KBS 구성원 100여명이 모였다. 최근 KBS 사측이 추진하는 조직개편에 대한 이사회 의결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이날 피켓 시위엔 KBS PD협회·기술인협회 등 2개 사내 현업단체를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노동조합, KBS같이노조 등 KBS 3개 노조 소속 구성원이 참여했다.

17일 KBS 이사회를 앞두고 KBS PD협회·기술인협회 등 2개 사내 현업단체를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노동조합, KBS같이노조 등 KBS 3개 노조 소속 구성원 100여명이 서울 여의 KBS 본관 2층에서 조직개편 의결 반대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비교적 최근까지 진행된 KBS 이사회 앞두고 열린 피켓 시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내 3개 노조가 한 목소리로 사측을 규탄하는 것도 이례적인 모습이다. 본관 로비엔 ‘조직개편 결사반대’ ‘박민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격앙된 목소리와 함성이 가득했다. 서기석 KBS 이사장이 회의장에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등장하자 시위 참여자들은 서 이사장을 에워싸고 더 크게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결국 이날 이사회 안건인 ‘직제규정 개정안’은 상정 보류돼 다음 이사회 회의 긴급 안건으로 넘기기로 결정됐다. 안건 상정 요건 절차적·형식적 문제에 대한 이사들의 지적이 나오자 서 이사장이 잠시 회의를 휴회한 후 논의를 거치고 나온 결과다.

야권 추천 조숙현 이사는 이사회 개최 7일 전 이사들에게 안건에 대한 관련 자료가 제출돼야 함에도 사측이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조 이사는 “저희가 이메일 통해 제공받은 건 ‘개정안을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는 의결 주문만 들어있고, 그에 대한 개정안 내용이 첨부돼 있지 않았다”며 “오늘 여기 책상에 개정 전후 대비표만 놓아져 있다. 집행기관(경영진)이 얼마나 졸속적으로 추진하려 하는 지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이사는 “이사회가 이 정도의 형식적 절차도 갖추지 않고 의결을 한다면 거수기나 다름없는 조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17일 KBS PD협회·기술인협회 등 2개 사내 현업단체를 비롯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노동조합, KBS같이노조 등 KBS 3개 노조 소속 구성원이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사측이 이사들에게 제출한 자료 내용에 의결 시행 예정일을 8월23일로 명시한 것을 두고도 문제제기가 나왔다. 야권 추천 정재권 이사는 “이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직제규정 개정이 중요한 사안이고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정도 건이면 ‘이사회 의결 이후 시행’으로 쓰는 게 맞다”며 “경영진은 이사회를 상대로 8월23일까지 무슨 일 있어도 처리하라는 식의 강요로도 느껴진다. 이사회가 과연 독립적, 자율적 기구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야권 추천 류일형 이사는 “조직개편은 중요한 문제이고, 최소한 기본적으로 직무분석, 여론수렴 등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그래도 성공하기 쉽지 않은 게 조직개편”이라며 “이사회가 임기가 보름여 남았고, 사장도 임기가 5개월 정도 남은 상황인데 이런 중차대한 일을 이 시기에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사내 3개 노조가 다 반대를 세게 하고 있다. 이사장이 잘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안건 상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사들의 지적에 이춘호 전략기획실장은 “자료가 방대할 경우 세부 내용은 별도로 송부해도 된다고 이사회 사무국장과 유권해석을 했다. 직제개정에 대해 별도로 첨부하지 않았다고 의결 안하는 게 맞느냐”고 맞받아 쳤는데, 야권 이사들은 “사무국장은 유권해석 권한 없다” “이 한 장짜리 내용으로 의결하라는 거냐”고 반박하며 회의에선 한동안 양측 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여권 추천 이사들도 직제규정 개정에 대해 충분한 심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여권 추천 권순범 이사는 “직제개편이 중요한 거 맞고, 충분히 심도 깊게 이사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거 100% 동의한다. 이사회도 다음 달이면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다”면서도 “사장이 제출해 안건이 올라온 거고 심도 있는 심의는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상정 조차 안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또 다른 여권 추천 인사인 이석래 이사는 “거수기 발언이 있었는데 이 점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협의 통해서 (안건 상정) 요건 확인하고 진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결국 휴회를 거친 뒤 서기석 이사장은 “오늘은 안건 상정 안하고 보완해서 다음주 긴급 안건으로 상정하겠다”며 안건 상정 연기를 결정했다. 이날 회의 보고 사항인 ‘2024년 제2차 특별명예퇴직 및 희망퇴직 시행안’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17일 점심시간에도 조직개편 추진 반대 피켓시위가 진행됐다. 언론노조 KBS본부를 비롯한 사내 각 노조와 KBS 기술인협회, PD 협회 구성원 등 약 200명이 참석해 "제대로된 의견 수렴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 중인 조직개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한편, 이렇게 KBS 구성원 대부분이 반대하고 일부 여권 이사들마저 우려하고 있는 사측의 조직개편안은 어떤 내용일까. KBS 3개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예능센터·드라마센터·편성본부를 합친 콘텐츠전략본부를 신설하고, 기술본부 규모를 대폭 축소한다. 또 제작1본부 산하 시사교양국은 사실상 해체해 ‘시사’가 빠진 채 사장 직속 ‘교양다큐센터’로 신설된다. ‘추적60분’ 등 기존 제작1본부 산하 시사교양국에서 제작하고 있는 시사 프로그램을 보도본부 이관한다는 방침도 알렸다.

이를 두고 사실상 “특정 업무를 분사, 외주화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 아니냐” “시사·교양 PD가 더 이상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이고, 저널리즘 역량을 빼앗는 조치”라는 내부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사측이 이번 조직개편을 추진하며 노조 설명회만 급박하게 진행한 직후 이사회에 안건을 상정해 “밀실에서 구성원의 의견도 묻지 않고 조직개편안을 마련해 그 방식도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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