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심의 근거 된 '건전한 통신윤리' 삭제 추진

이훈기 민주당 의원 방통위법 개정안 발의
2011년 헌재 "위헌 '불온통신' 되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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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른바 가짜뉴스를 심의한 근거로 쓴 ‘건전한 통신윤리’ 문구를 삭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개정이 추진된다. 그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불법·청소년 유해 정보가 아닌데도 사회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정치적 게시물까지 삭제해 와 검열 문제가 제기됐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방심위의 심의 업무 범위를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 규정한 방통위법 21조 제4호를 삭제하고 “불법정보 및 청소년에게 유해한 정보”로만 한정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방심위가 불법·청소년 유해 정보를 심의한다는 내용은 방통위법 시행령에 지금도 규정돼 있다. 불법·청소년 유해 정보는 음란물이나 청소년보호법 위반 게시물 등 9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행령에는 이외에도 “~등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는 문구가 있어 사실상 모든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삭제할 수 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제출받은 '가짜뉴스 근절 추진현황 및 법적근거' 보고서. /이훈기 의원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가짜뉴스 근절 추진현황 및 법적근거’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은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방통위법상 ‘건전한 통신윤리’와 그 시행령에 있는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 규정이 정부가 가짜뉴스를 심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라는 내용이다.

방통위법과 시행령의 폭넓은 위임을 받은 방심위 통신심의 규정은 ‘사회질서 저해’ 정보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혼란 야기’ 정보를 심의하도록 규정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가 심의됐고, 올해는 SNS에 퍼진 ‘윤석열 대통령 짜깁기 영상’이 삭제됐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방통위법상 '건전한 통신윤리'와 그 시행령을 가짜뉴스 심의 근거로 국무회의에서 보고했다.

앞서 2011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방통위법의 위헌성을 검토했지만 합헌 결정을 내리며 법이 유지됐다. 최병성 목사가 시멘트 공장이 환경에 미치는 위험을 취재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인터넷 기사 9건이 삭제되자 이를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발단이었다.

최 목사 측은 ‘건전한 통신윤리’는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에 반한다”며 “법률로써 구체화는 전혀 않은 채 전적으로 행정입법에 맡겨놓은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법률유보원칙에도 반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헌재는 정보통신의 영역은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현실의 변화에 대응하여 유연하게 규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하게 대통령령에 위임하여야 할 필요성도 있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8명 중 3명은 위헌이라며 소수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건전한 통신윤리’란 그 개념이 지나치게 불명확하고 애매하여 정보의 범위를 정하는 지침이 될 수 없다”며 “이미 (200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판단되었던 ‘불온통신’이 ‘불건전 정보’라는 모습으로 되살아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방통위법 개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28건 발의됐지만 방통위원장의 인사청문회를 도입하고 위원의 결격사유나 의결 요건을 강화하는 등을 바꾸자는 내용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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