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기반 폭력 사건과 언론의 책무

[언론 다시보기]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젠더기반 폭력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일에 미디어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거의 매일 젠더기반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건의 발생, 수사 내용 및 재판 결과에 대한 보도가 잇따른다. 새로운 사건이 끊임없이 쌓이는 것은 물론 역사적 부정의 상황에서 제대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도 있다. 지난 5월20일 개최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토론회’에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위한 지원과 보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지적된 바 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폭력 피해 이후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경험하며, 무엇보다 피해생존자의 목소리가 이해되지 못하고 그들이 받는 차별과 고통이 인식되지 않는 해석학적 부정의를 경험한다.


피해생존자의 피해 회복은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 해석학적 부정의 상태를 해결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밀양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명단을 공개한다면서 소란을 일으킨 유튜버들은 정의라는 핑계를 내세웠다. 밀양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범죄에 더해 사법부와 지역 사회가 2차 피해를 유발하고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막은 사건이기에, 다수의 시민이 해당 채널의 폭로 영상을 보면서 공분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해당 유튜버들이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누구의 어떤 정의인가에 대한 질문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저 수익을 위한 재료로 활용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질 수 없게 된 법·제도적 한계에 대한 질문 역시 생겨난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질문 역시 제기된다. 젠더기반 폭력 사건 보도는 사건이 알려진 후 이를 추적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식 수사 발표나 제보에 따른 취재 기사보다는 온라인에서 이미 화제가 된 다음 이를 중계하는 형태로 보도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렇게 중계에 그치게 되면 언론이 사건의 해결과 정의의 실현을 위한 대안적 공론장을 열기가 더 어렵다. 특히 이번 논란처럼 유튜버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가공하는 것에 불과하면서도 겉으로는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내세울 때라면 언론의 보도 양태가 피해자 중심적이지 못한 채로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원론적이지만 결국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보도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생존자가 또다른 폭력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고려를 다 해야 한다. 언론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피해생존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게시되는 것은 물론, 관련된 상황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나 오인될 수 있는 정보의 유통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피해 생존자에게 트라우마적 기억의 환기로 인한 고통의 증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에서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면서 피해생존자를 위한 2차 피해 방지에 대한 언론사와 플랫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은 유튜버의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 논란을 중계하는 데 그쳤다.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 피해 회복을 위한 논의의 틀을 짜지 못한 채로 일화적 사건으로 소비하는 보도가 다수였다. 왜 당시 법·제도적 과정이 피해생존자의 정의 실현과 회복 과정이 되지 못했는가, 현재는 나아졌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이 피해생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매일같이 보도되는 젠더기반 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과 정의의 실현에 대한 충실한 후속 보도 역시 요구된다.


미투 운동 이후 우리 저널리즘은 분명히 변화했고 젠더기반 폭력 관련 보도에 더 많은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제출된 바 있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사회의 법제도 및 인식의 변화와 이어질 수 있도록, 젠더기반 폭력 보도에는 거듭된 주의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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